세계적인 거장 올레그 비노그라도프가 유니버설발레단과 작업한 지 10년이 넘었다.그 결실인듯, 엄청난 제작 여건을 갖춘 이 발레단이 그에게 ‘로미오와 줄리엣’ 안무를 의뢰했다.
신작 ‘로미오와 줄리엣’은 대규모 출연진에서 고난도의 기량까지 러시아 발레에 대한 향수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무대였다.
웅장한 장치는 장면전환의 공백을 최소화하면서도 화려함을 강조했고 의상과 소품도 현대적 안무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요로움을 선사했다.
초청지휘자 파블 부벨니코프도 머큐쇼의 죽음이나 로미오의 죽음처럼 음악이 춤의 감동을 배가시키는 장면에서 드라마 발레음악의 진수를 재현하며 일체감을 다졌다.
내용면에서는, 2막의 광장에서 벌어지는 카니발이 극중극 형태로 상세히 묘사되어 보다 고전적이었던 반면 감정을 표출하는 방법은 보다 직설적이었다.
결혼을 강요하는 줄리엣의 아버지 캐퓰릿은 비발레적일 정도로 잔인했고 티볼트 살해에 대항하는 줄리엣의 모습도 고유한 이미지를 해칠만큼 강렬했다.
그러나 극도의 화려함과 사실적 표현력에도 불구하고 기존 작품들과 비교할 때 구성이나 기교만으로 객석을 휘어잡는 힘은 약했다.
고난도의 기교는 많았지만 산발적으로 나열되어 무용가들은 힘들고 감동은 크지않은 이중고를 겪었다.
첫날인 14일 밤 공연에서 줄리엣 역 김세연과 로미오 역 벨야옙스키는 빠르고 곡예적인 2인무와 사실적인 역할 묘사에서 탁월한 기량을 발휘했다.
로렌스 사제 역 솔로비요프의 조용한 위력과 티볼트 역 권혁구의 악의에 찬 연기도 극에 활력을 더했다.
거장의 역작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세계의 주목을 받게될 한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안무자는 ‘영원히 반복될 사랑’을 강조했다.
두 가문이 화해한 뒤, 흰색 유니타드에 촛불을 든 수많은 로미오와 줄리엣이 객석으로 퇴장하며 르네상스와 현대를 연결하는 사랑 이야기를 각인시켰다.
바로 이 감성이 이번 작품의 진정한 매력이었다.
17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21~22일 의정부 예술의전당, 28~29일 군포시민회관. (02)2204-1041
/문애령ㆍ무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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