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14일은 5,000년 역사상 가장 기쁜 날!’한국의 사상 첫 월드컵 16강 진출이 확정된 14일 밤 길거리에서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며 축제의 밤을 보낸 국민 응원단 규모는 한국 근ㆍ현대사를 통틀어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인파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 집계에 따르면 이날 전국 각지에서 ‘길거리 응원’에 참여한 국민은 총 278만6,000여명. 서울시청 앞 광장 47만여명과 광화문 일대 45만여명 등 서울에서만 13곳에 모두 142만3,000여명이 모인 것을 비롯, ▦부산 17만명 ▦인천 10만명 ▦울산 6만명 ▦제주 2만8,000여명이 붉은 물결을 이루는 등 전국 223곳에서 길거리 응원전이 펼쳐졌다.
일본측 자료에 따르면 1919년 3ㆍ1운동 당시 3개월간 전국에서 202만여명이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당시 인구와 단순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전 국민이 ‘붉은 악마’가 된 길거리 응원의 응집력을 느낄 수 있는 수치다.
87년 6월 민주화항쟁기간 국민의 참여가 가장 높았다고 알려진 6월26일 ‘국민평화 대행진’에서도 전국 33개 도시에 모인 학생과 시민의 수는 140여만 명 이었다.
경찰이 이날 추산한 길거리 응원단 수 278만6,000명은 평소 시위참가 인원을 산출하는 방법을 동원했다. 응원이 열린 장소의 총 평수에 평당 인원을 곱하는 기법으로 응원단이 빽빽하게 앉아 있는 경우에는 한 평에 9명, 다소 공간이 여유 있는 경우에는 한 평에 6명이 앉은 것으로 계산한다.
응원단이 서 있는 경우에도 빽빽하게 서 있을 때는 한 평에 15명, 공간에 여유가 있을 때는 한 평에 10명으로 잡았다.
경찰의 계산법에 따르면 이날 소공로와 을지로 일대를 포함, 47만여명이 몰린 시청 주변에서도 분수대를 중심으로 한 광장에 몰려든 인파는 12만명이다. 분수대 주변 광장 8,000여평에 사람이 발 디딜 틈 없이 서 있을 경우의 평당 인원 15명을 곱한 것.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6ㆍ10항쟁 당시 시청앞 광장에 100만명이 몰렸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면서 “14일 시청앞 광장에서 도무지 빈틈을 찾아볼 수 없었던 점으로 미뤄 볼 때 역사상 시청 앞에 모인 인원 중 최고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기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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