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일찍이 없던 한바탕의 카니발이었다. 답답한 일상의 옷을 벗어 제끼고 마음껏 감정을 분출한 장엄한 카타르시스의 장(場)이었다. 과연 언제 우리에게 이런 계기가 있었던가.15일 새벽 전국은 어느 한 곳도 잠들어 있지 않았다. ‘월드컵 야근’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목 어디서나 흥분을 삭이지 못한 인파와 마주쳤다. 유독 낯가림이 심한 우리 국민들이 눈이 마주치기만 하면 “대~한민국”을 외치며 ‘하이 파이브’를 해댔다. 태극기를 몸에 두른 채 축제판에 뛰어든 외국인들도 흔하게 눈에 띄었다.
차량들은 채 몇백m도 진행하지 못하고 멈춰야 했지만 아무도 짜증을 내지 않았다. 오히려 “짝짝짝 짝짝’ 박수장단에 맞춰 경적을 울려댔다. 길가 포장마차, 노천카페마다 응원구호로 바뀐 축배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광경 만으로도 충분히 가슴이 벅차 올랐는데 조금 지나 그야말로 코 끝 찡한 감동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것은 단순한 기쁨을 넘은 전율이었다.
어둠이 깔린 서울시청 앞에서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은 청소년들이 환경미화원에게서 쓰레기 봉투와 빗자루 등을 빌려서는 쓰레기들을 말끔히 치우고 있었다. 한 고교생에게 “왜 그렇게까지 꼼꼼하게 청소하느냐”고 물었더니, “16강 진출국 시민으로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환경미화원 김모(47)씨는 “엄청난 쓰레기를 각오하고 나왔는데 뜻밖에 별로 할 일이 없다”고 놀라워 했다.
감동을 준 것은 이들만이 아니었다. 거리에서도 인파들의 열기가 지나칠만 하면 어디선가 “질서, 질서” 구호가 튀어나와 분위기를 조절했다.
거리를 돌고돌아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이번에는 초등생 정도의 낯 모르는 어린이가 아파트 창문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아저씨,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이미 동녘이 훤하게 터오기 시작하는 시각이었다.
김성호 사회부기자 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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