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 월드컵 예선이 낳은 이변들에 대해 유럽 축구계에 경탄과 자조 등 만감이 교차하고 있다.한국과 일본의 16강 진출에 박수를 보내는 심정 이면에는 축구의 변방에 불과하던 아시아 축구의 급부상에 대한 질시어린 경계심이 깔려 있다.
또 프랑스를 선두로 세계 축구를 호령하던 유럽 축구의 쓸쓸한 퇴조에 대한 아쉬움이 배어있다.
프랑스 AFP통신은 14일 ‘축구를 지배하던 엘리트들이 피라미의 반란에 전복당했다’는 제목의 월드컵 중간 평가 기사를 타전했다.
이 통신은 프랑스와 포르투갈의 탈락이 세네갈을 시작으로 한국과 일본으로 이어진 ‘피라미의 반란’에 의한 것이었다고 빗대면서 전 대회 우승국으로 무득점 탈락의 수모를 당했던 프랑스의 구겨진 자존심을 달랬다.
독일의 dpa통신은 이날 이번 대회가 ‘놀라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상한(strange) 월드컵’ 이 되고 있다고 표현했다.
축구 강호의 잇단 탈락으로 월드컵 본선토너먼트가 세계 축구팬에게 생소한 팀과 선수들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는 질시와 자조가 섞인 이야기다.
이 같은 지적 뒤에는 자신들의 축제로 즐기던 월드컵의 잔칫상을 ‘아웃사이더’였던 아시아와 아프리카 축구에 내준 데 대한 유럽 언론의 복잡한 심경이 깔려 있다.
미국의 AP통신도 스웨덴과 세네갈, 일본과 터키, 브라질과 벨기에 등의 경기로 포진된 본선 토너먼트는 전세계 축구팬의 가슴을 뛰게 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거들었다.
한술 더 떠 영국의 로이터 통신은 이번 월드컵이 전혀 예상치 못한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결승전에서 한국과 일본이 맞붙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을 내보냈다.
무엇보다 세계 정상급 스타들의 화려한 플레이를 보지 못한 데 대한 허탈감이 컸다.
AP통신은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과 아르헨티나의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의 이름 대신 세네갈의 파프 부바 디오프와 일본의 이나모토 준이치 등의 낯선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럽 언론들은 특히 포르투갈의 ‘황금세대’를 더 이상 월드컵에서 볼 수 없게 된 점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루이스 피구, 주앙 핀토 등 포르투갈 대표선수들은 절반 이상이 1989년과 91년 세계 청소년축구대회를 잇따라 석권하고 2000년 유럽선수권대회의 준우승에 이어 16년만의 월드컵 진출을 이끌어 낸 주역들이다.
로이터통신은 30대에 들어선 이들 축구 영웅들이 한국전에서의 예기치 못한 패배로 조국에 월드컵 우승컵을 안겨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날려보내면서 포르투갈 국민들에게 큰 마음의 상처를 안겼다고 전했다.
한편 한국과 포르투갈 경기 직후 영국의 BBC방송에서 마련한 시청자 투고함에는 루이스 피구와 지네딘 지단 같은 유럽의 축구 스타들을 보지 못하게 된 데 대해 탄식하는 유럽 축구팬들의 다양한 의견이 쏟아졌다.
반면 세계 축구의 주류에 당당히 합류한 한국 축구에 대한 찬사도 있었다.
영국의 한 시청자는 포르투갈 선수들이 패배한 것은 심판이 아니라 한국 선수들이 보여줬던 패기와 열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스타의식에 젖어있던 늙은 포르투갈 선수들이 한국 선수들의 스피드를 강력한 태클로 막으려다 자멸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김병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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