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일 같은 함성과 목마름으로 맛본 16강의 기쁨은 우리를 열광케 한다. 필경 기쁨 뒤에 찾아오는 허탈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기쁨에 열광한다.4,000만 국민이 함께 가슴을 풀어 헤치고 오직 대한민국으로 한 마음이 되어 바라던 것을 거머쥔 적이 기억에 없었으므로 이 폭풍우 같이 덮친 기쁨은 더욱 가슴 쓰리고 열광적으로 값지다.
영화 ‘집으로…’처럼, 늙은이나 젊은이나 어른이나 아이들, 그리고 달동네 낮동네 할 것 없이 분수처럼 솟구치며 열렬히 16강을 고대했으므로 이 기쁨은 영원히 우리들 뇌리에 남아있을 것이다.
이렇게 가슴 에이고 아프도록 만끽해본 일이 과연 얼마 만인가. 오늘 밤은 잠들 수 없다. 그것은 가슴이 너무나 아프기 때문이다. 잠자던 맥박이 뛰고 자리끼처럼 차가웠던 가슴이 뜨거워졌다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 잠들지 않을 명분을 충분히 획득한다.
거리에 더욱 불을 밝히고 힘껏 경적을 울려 무엇으로도 상쇄할 수 없는 이 기쁨을 우리들의 허파 속에 숨가쁘게 몰아넣자. 그리하여 이 거대한 대한민국의 맥박 소리를 세계인들도 함께 들을 수 있게 하자.
우리는 노쇠하지 않았으며, 우리의 저력이 흠집나거나 마모되지 않았으며, 우리들의 탄력성과 순발력이 황야를 헤치고 달리는 열차의 기적소리처럼 왕성한 폭발력과 멀고 먼 메아리를 가졌다는 것을 우리들의 가슴에 아로새기자.
어느 한 순간, 그리고 어느 모퉁이에도 추상적이거나 공허하거나 허술하게 스쳐 지난 적이 없었던 이 정교하고 절묘한 16강의 기쁨, 그 붉은 핏줄이 우리의 폐부 속에 공룡처럼 웅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100번, 200번을 되뇌고 되새겨도 결코 수치스럽지 않다.
모든 미사여구가 동원된 찬사를 지겹도록 늘어놓는다 하더라도 이 기쁨이 손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흡사 우리의 역사에서 처음 본 것처럼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우리는 오랜 동안 버릇처럼 둘이거나 셋이 된 것을 변명해야 했었고, 그래서 때로는 수치심으로 그것을 말해야 했었다.
그러나 이제 질시, 배척, 아귀다툼, 탐욕, 의심, 모함, 아첨, 사악함, 증오, 권태, 야비함, 모멸감, 추잡함 그 모든 것을 우리들의 가슴에서 삭제하는 16강의 전리품을 드디어 가슴에 안아버렸다.
이 펄떡거리는 삶에 비축되어 있었던 창조적 에너지를 온후한 가슴으로 읽기로 하자. 우리 민족의 역동성이 삼투압적인 열망으로 뛰고 있는 선수들에게 해일처럼 다가가 그들과 우리가 하나 되었다는 놀라운 사실의 확인은 16강의 기쁨 위에 있었던 또 다른 하나의 기쁨이었다.
부끄러워하지 말라. 개탄하지 말라. 외로워하지 말라. 증오하지 말라. 냉소적이지 말라. 낱낱의 나날들이 오들오들 살아있고, 유장한 삶의 역동성이 우리들의 것인데, 왜 부끄러워하며, 증오하는가.
오늘의 장중한 기쁨이 더없이 값지며, 영원히 가슴속에 간직해야 하는 까닭을 잊어버리지 말자. 맹렬한 정진을 통해 드디어 완성한 이 승리를 이성적인 사유를 통해 간직해 두자.
소설가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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