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 히딩크 감독은 한국축구 세계화의 초석을 놓았다. 기본과 기초, 그리고 상식을 무엇보다 우선하는 그의 지도방법은 어느덧 우리 사회 각 분야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히딩크의 리더십을 조명하는 시리즈를 마련한다. / 편집자주≫선진축구의 전도사 거스 히딩크 감독이 가장 먼저 손을 댄 부분은 공교롭게도 기초였다. 바로 “서로 대화를 해라” “고개를 들고 패스해라” “행동하기 전에 생각해라” 등….
한 나라의 대표선수들에게는 마치 “휴지를 버리지 말라” “공중도덕을 잘 지키자”와 같은 초등학교 도덕책에 등장하는 수준의 가르침이었다.
이제 돌이켜보건대 세계최고 감독의 입에서 나온 이 같은 상식은 결국 달라진 한국축구의 밑거름이 됐다. 히딩크 감독은 이처럼 너무나 당연했기 때문에 잊고 지내던 상식을 일깨우며 한국축구의 체질개선에 나선 것이다.
대화를 하라는 말은 한국의 특수상황과도 맥이 닿아 있다. 히딩크 감독은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 권위적인 팀 분위기는 한국축구 세계화의 걸림돌이라고 보았다. 경기 중에는 “형”이라는 호칭을 생략하라는 요구도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선수간 대화나 의사소통 분위기를 조성한 히딩크 감독은 패스의 정확성과 스피드를 높이기 위해 ‘상식’을 주문했다. “패스를 하는 사람이 받는 사람에게 턴과 리턴 중 어느 동작을 취해야 할지 미리 말해주라”는 것이었다.
한국선수들은 대화하는 법을 먼저 배웠고 자연스럽게 패싱력을 향상시켰다. 패스는 바로 발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이었다.
히딩크 감독은 패스를 할 때는 반드시 고개를 든 상황에서 하도록 했다. ‘헤드업을 하지 말라’는 주문이 골프 초보자에게 ABC인 것처럼 고개를 들고 패스를 하는 것은 축구선수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기본이었다.
그러나 한국선수들은 기본을 잊고 있었다. 공을 보느라 고개를 숙이면 시야를 확보할 수 없지만 고개를 들고 패스하면 상황을 읽으면서 공 처리를 할 수 있다.
종전의 한국축구와 가장 달라진 점은 바로 이 두 가지다. 결국 히딩크 축구는 아주 작은 변화에서 시작됐고 그 미세한 차이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히딩크 감독은 1년5개월의 개혁작업을 이처럼 기초로 돌아가는 일로 시작했다. 기초종목의 발전 없이 전체 스포츠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고 기초과학 없이 응용과학도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히딩크의 기초 우선주의는 사회 전반에도 많은 교훈을 남겼다. 정몽구 현대ㆍ기아차 그룹 회장은 “히딩크 감독의 기초에 충실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조직운영을 기업경영에도 참고하라”고 임원들에게 주문했을 정도였다.
눈 앞의 이익을 좇기에 바쁜 한국사회에 기초로 돌아가자는 히딩크식 논리는 신선함으로 다가온다. 또 다른 펀더멘털, 바로 체력이 한국축구 16강 진출의 길잡이가 됐다는 점도 히딩크의 ‘기본 우선주의’의 결과였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의 꿈을 실현시킴으로써 기본을 탄탄히 하는 일이 가장 빠르고 확실한 지름길이라는 점을 입증해냈다. 히딩크 감독이 남긴 많은 교훈 중 단 한 가지만 배워야 한다면 그것은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는 가르침일 것이다.
김정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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