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 / 초고속으로 바뀌는 세상 변화를 수용하고 해석하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 / 초고속으로 바뀌는 세상 변화를 수용하고 해석하라

입력
2002.06.15 00:00
0 0

*'지식의 최전석' 김호기 등 지음1998년 푼수 역 전문 탤런트 전원주가 유학간 아들이 보고 싶어 비행기를 좇아 들판을 달리는 광고가 방송된다.

국제전화서비스 광고를 복고풍 만화로 치환한 이 광고는 다이얼을 돌리는 구식 전화기, 옛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내리닫이로 써 내려간 자막, 그리고 80년대 만화 ‘짱가’의 주제가를 등장시켜 촌스러움이 물씬했다.

그러나 광고 평론가 김홍탁은 이 광고가 한국광고의 패러다임을 바꿨다고 해석했다.

세련됨을 거부한 이런 류의 광고는 이미 만국 공용어로 통용되고 있었다.

네덜란드의 롱 부츠 광고에는 왼쪽 무릎 아래가 잘린 여성 모델이 등장하고 스웨덴 광고에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 받는 가족이 흑인이고 백인이 이들의 하인으로 나온다.

이들 광고는 대부분 제품 판매와 브랜드 인지도에서 보기 드문 성과를 거두었다.

김홍탁은 이런 ‘안티 광고’가 시장과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즉 광고를 보는 소비자의 눈이 변했고 안티 광고는 그런 눈에 따라 광고의 내용을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변화는 광고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지러울 정도로 빠른 속도의 변화가 모든 영역에서 일어나고 있다.

생명복제, 인간게놈프로젝트, 디지털기술, 정보화, 사이버경제, 인문학의 위기, 세계화, 시민운동, 로봇과 인공위성, 첨단의학…

이 대전환의 시대는 모든 영역에서, 특히 학문과 지식의 세계에 변화를 수용하고 해석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지식의 최전선’은 그 같은 임무를 자임하고 나선 책이다.

강단의 교수부터 현장의 영화감독까지 52명의 필자는 29개 분야 70편의 글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일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의 여러 모습을 짚어보고 그것이 가져올 장래의 모습을 전망한다.

변화가 상호침투적이고 복합적이기 때문에 책은 같은 현상을 각도를 달리해 접근하기도 한다.

유향숙 인간유전체기능연구사업단장은 2010년까지 계속될 우리나라의 인간유전체기능연구사업이 질병의 조기 진단 및 예방, 그리고 신약개발에 전기가 되고 생명과학 뿐 아니라 정보통신, 나노기술, 기계공학 등을 융합하는 기술 개발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반면 성균관대 강사 임종식은 사원 채용시 유전자지도를 첨부해야 하고 결혼할 때 유전자 진단서 교환이 의무화하며 보험사는 유전 정보를 분석해 가입자를 선발하는 상황도 예상할 수 있다며 부작용을 경계한다.

역사 분야에서는 미시사의 유행이 변화의 보기로 소개됐다. 조한욱 한국교원대 교수는 ‘과거에 실재했던 평범한 작은 사람들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을 규범화시킨 연구 경향’으로 미시사를 규정한 뒤 미시사가 역사에서 흔적없이 사라졌던 인물을 복원시킴으로써 지배문화와 민중문화의 갈등, 대립, 절충의 관계를 추적하고 이야기체 역사를 부활시켜 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고 평가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계화의 진행이 국민국가의 유지에 미칠 영향을 전망한 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초국적 자본의 세계경제 지배와 그에 따른 불평등을 심화하기 때문에 국민국가는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라는 규범적 차원의 역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승희 성균관대 교수는 가족제도의 변화와 이에 따른 노인 부양 문제를 고민한다.

대가족 하에서는 집안 노인을 여러 사람이 나눠 부양했지만 핵가족에서는 한 사람이 해야 하기 때문에 부양이 ‘감옥살이’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 효도나 가족주의만을 강조하는 것이 한계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회복지의 천국 북유럽은 어떤가. 이들 사회의 노인 역시 고독하게 먼 산을 바라보고 끝내는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맛있는 음식을 달라고 보채는 손자와 부르면 언제든 달려오는 북유럽의 가정도우미 가운데 할머니는 누구를 더 살가워할까” 라고 반문하면서 가족주의나 사회복지 어느 하나만 강조하는 것은 지향할 바가 아니라고 말한다.

결국 이 둘의 결합이 우리 앞에 놓인 과제인데, 필자도 그 구체적 방법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책에는 이밖에 건축, 애니메이션, 음악, 환경, 배아연구 등을 다룬 글이 변화라는 공통 분모 아래 모아져 있다. 하지만 워낙 분야가 다양하다 보니 맛만 보여주거나 밋밋한 것도 적지 않다.

각 분야에서 벌어지는 변화와 문제점, 대안을 사전식으로 정리해 보여주자는 취지로 기획됐다는 점에서 이해해줄 만하다.

관련 지식을 더 얻고싶은 독자라면 각 단원에 소개된 참고 서적과 사이트를 활용하면 된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