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머리카락에 물을 들이든, 무슨 생각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내가 내 재산으로 무엇을 하든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고 범죄가 되지 않는 한 간섭하지 말라는 것이 자유권이다.요즘 세상에 와서야 자유권이라는 것이 잘 실감이 나지 않지만, 봉건시대에는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수도 없었고, 독재정권하에서는 정권에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고문하고 죽였다.
그 때에는 자유권이 이 세상 모든 권리를 뜻하는 것 같았다.
요즈음 민주화가 되어서 자유가 이토록 신장되었으니 사람들은 행복한가? 불행히도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사람은 자유만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남들과 어울려서 너무 뒤떨어지지 않게 먹을 것과 누울 곳을 마련하고 자녀들을 교육하고 아픈 데 없이 살 수 있어야 ‘인간답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답게 살 권리, 이것이 바로 사회권이다. 사람이 모여서 살려면 서로 양보하고 서로 나누지 않으면 안 된다. 양보하고 나누지 않으면 싸움이 일어나고 싸우면 그 무리는 깨지거나 불행해진다.
서로 양보하고 서로 나누는 작업을 하기 위해 국가는 세금을 거두어 자금을 마련한다. 자유권만이 지상의 목표라면 국가는 별 할 일이 없게 된다.
국민이 하는 대로 그냥 내버려두면 되니까. 국가에서 국민이 버는 돈의 5분의 1 이상을 거두어가는 것은 사회권을 위해서이다.
국민이 고루 인간답고 편안하게 잘 살게 함으로써 서로 싸우고 서로 불행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서구에서는 버는 돈의 2분의 1 정도까지 국가에서 거두어 고루 분배한다.
사회권의 내용은 기본적으로 의료와 교육이다. 선진국에서 의료와 교육은 국가에서 세금을 거두어 누구에게든지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음은 사회안전망이다. 일자리를 잃었을 때, 장애나 노령으로 더 이상 일할 수 없을 때, 어떠한 이유로든 일정수준 이하로 가난해졌을 때 사회공동체가 최소한의 생활, 나아가 일정 수준의 생활을 보장하여 주는 것이 그것이다.
누구라도 쾌적하게 살 권리도 사회권의 중요한 내용이다. 사회공동으로 제공되는 공원, 도서관, 체육시설, 깨끗한 공기, 저렴하고 편리한 대중교통 등이 어느 수준인가가 그 나라의 사회권의 수준을 말해 준다.
약자에 대한 배려 또한 사회권의 내용이다. 아이들, 노인들, 장애인들, 여성 등 사회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 불리함을 극복할 수 있도록 수당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사회의 소득을 하후상박으로 재분배하는 모든 내용이 사회권에 포함된다.
세금을 낼 때 소득에 관계없이 똑같이 매겨지는 간접세를 되도록 줄이고, 소득에 비례하여 누진적으로 부과하는 직접세를 확충하는 것, 세금이나 사회보험에서 탈루되는 소득을 없애고 소득에 따른 누진율을 적용하는 것 등이 소득재분배의 내용이다.
자유권은 국가 권력의 폭력과 간섭을 거부하는 권리이고, 사회권은 시장과 자본권력의 폭력으로부터 국가 사회의 보호와 지원을 요구하는 권리이다.
따라서 자유권에서는 국가의 간섭을 악이라 여기고, 사회권에서는 국가의 불간섭을 악이라 여긴다. 이 자유권과 사회권을 합해서 세계인권선언에서는 ‘인권’이라 하고, 우리 헌법에서는 ‘기본권’이라고 한다.
인권운동이나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행로가 요즘 들어 서로 갈라지는 것은, 이러한 시대변화에 따른 자유와 인권개념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자유는 더 이상 진보성을 독점할 수 없게 되었다. 표현의 자유는 청소년 보호와 충돌하고, 사유재산권의 보장은 공공 영역의 확보와 충돌한다.
자유권조차 짓밟았던 자들이 사회권을 보장해 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이지만, 자유권을 위해 일하던 자들이 사회권을 위해 일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이제 인권의 업그레이드와 인권운동가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박주현 사회평론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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