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안들의 한국 외교관 폭행은 순식간에 벌어졌다. 13일 한국 영사부 주변 경비 초소를 막고 탈북자 변씨의 원상회복을 요구하던 한국 외교관들은 갑자기 중국 공안들에 의해 주먹질과 발길질을 당했다.주재국이 외교공관과 외교관 신체에 대한 불가침권을 한꺼번에 침해한 것은 세계적으로 전례가 드문 일이다. 한국 기자들은 이날 사태의 시종을 현장에서 지켜봤다.
■ 불법진입과 강제연행
탈북자 원모(56ㆍ보일러공)씨는 이날 오전 11시께 아들(15)과 함께 택시를 타고 영사부 서문 앞에 도착했다. 이들은 중국 경비요원들이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자 갑자기 영사부 건물로 뛰어들어 민원실로 들어갔다.
그러자 경비요원 2명이 동의를 얻지 않은 채 뒤따라 들어와 저항하는 원씨를 순식간에 제압하고 강제로 끌고 나갔다. 이들은 원씨를 영사부 외곽 1평 남짓한 경비초소에 수용하고 공안(경찰) 요원을 불렀다.
우리측 영사 3명과 직원 등 5명은 곧바로 뒤따라가 원씨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지 못하도록 초소 주변에 의자로 울타리를 치고 출동한 중국 공안들과 대치했다. 영사들은 중국측에 원씨의 신병을 즉각 영사부 안으로 원상회복하라고 요구했다. 우리 대사관측도 중국 외교부에 공관 불가침권을 규정한 빈 영사협약을 위반했다며 강력히 항의했다.
■ 대치와 무차별 폭행
양측의 대치 및 신경전은 5시간 동안 계속됐다. 그러자 오후 4시께 승용차와 ‘京 06282’ 승합차가 건장한 공안 요원 10여 명을 태우고 도착했다. 중국 공안들은 “여기는 중국 땅이다. 중국 법률에 의해 탈북자 원씨를 데려가겠다”는 통고를 했고 우리 외교관들이 거부하자 몸으로 밀치며 강제 연행을 시작했다. 이때 일부 공안들의 입에서는 술 냄새가 났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우리 외교관들은 다른 직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우리측 8~9명과 중국 공안들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밀고 밀치는 상황이 2분여 계속되자 갑자기 중국 공안이 한국 외교관과 영사부 직원들, 그리고 한국 특파원들에게 무차별로 주먹질, 발길질을 가했다. 탈북자 원씨는 발을 초소 벽에 걸고 버텼으나 역부족으로 끌려가 버스에 태워졌다.
이 과정에서 대사관 변철환(卞喆煥ㆍ35) 서기관은 왼쪽 다리가 10㎝ 가량 찢어졌고, 박기준(朴基俊ㆍ38) 영사는 20여㎙나 끌려가면서 발길, 주먹질을 당해 양복 상의가 완전히 찢어졌고 온몸에 타박상을 입었다. 현장에서 촬영을 도와 주던 영사부 현지 고용원 정춘임(鄭春任ㆍ30ㆍ여)씨도 입술이 터져 피를 흘렸고, 얼굴을 주먹으로 맞아 퉁퉁 부었다.
연합뉴스 이상민(李相民ㆍ50) 특파원도 발길질을 당해 다리에 찰과상을 입었다. 민원 때문에 영사부를 찾았던 한국인 2, 3명도 우연히 이 장면을 목격하고 가세했다가 뒤로 넘어지며 발로 밟히는 수모를 당했다. 중국 당국은 중국 CC-TV 위성망을 통해 현장 촬영 화면을 서울에 전송하려던 KBS와 MBC의 송출을 중단시켰다
■ 대사관측 반응
사건은 10여 분 만인 오후 4시 10분께 끝났으나 현장인 영사부 주변은 펜스가 넘어졌고 신발들이 나뒹굴었으며 여기저기 핏자국이 흩어졌다. 한국대사관 관계자들은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처음 당해 보는 일”이라고 어이없어 하면서 분을 삭이지 못했다. K씨는 “중국을 좋아했는데 오늘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원씨의 아들은 현재 영사부에서 보호를 받고 있다.
베이징=송대수특파원
dssong@hk.co.kr
▼원모씨 연행 시간대별 상황▼
▦ 13일 오전 11시=원모씨 부자 한국대사관 영사부에 진입.
▦ 11시 2분=중국 경비요원 2명, 영사부 민원실에서 원씨 강제 연행
▦ 11시 10분=한국 영사 3명, 원상회복 요구. 중국 경비초소 앞에 의자 놓고 대치.
▦ 낮 12시=한국 영사 및 직원들 교대로 식사하며 현장 고수.
▦ 오후 4시=중국 공안 증원병력 도착, 강제연행 통보 및 몸싸움.
▦ 4시 2분=중국 공안,학교 외교관과 직원,기자에게 무차별 폭행.
▦ 4시 10분=중국 공안 원씨 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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