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컵이 가족의 생활상도 바꿔놓고 있다.주로 밤 시간대에 열리는 경기 덕에 가장이 서둘러 귀가해 온 가족이 오순도순 TV 앞에 앉아 축구를 즐기는 월드컵 패밀리가 늘고 있는가 하면 밖에서 오히려 더 늦게 귀가하는 남편 때문에 졸지에 생과부 노릇을 하는 주부들도 많다.
폴란드전이 있었던 4일. 직장여성 S씨(42)는 남편, 중1짜리 아들과 함께 폴란드전을 시청하면서 ‘가족월드컵’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지방에서 근무하며 매주 수요일 집에 오던 남편이 이 날은 일정을 바꿔 경기가 열리는 화요일에 상경,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 것.
“월드컵이 뜻밖에 가족의 소중함을 인식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반면 전업주부 C씨(37)는 “요즘 남편 구경한지 오래됐다”며 자신을 ‘월드컵 과부’라고 소개한다.
모 일간지 사진기자로 근무하는 남편은 월드컵 취재로 전국을 도느라 아예 집에 귀가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전화로만 서로 안부를 물을 뿐.
10일 미국 전 때도 이웃 주부들과 경기를 봤다.
C씨는 “월드컵이 가족을 결합시킨다지만 나처럼 월드컵 시작 이후로 생과부 신세 됐다는 사람도 의외로 많더라”며 웃었다.
또 다른 직장여성 S씨(39)도 ‘월드컵 과부’에 속한다. 남편이 월드컵 관련 일에 종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분파이기 때문이다.
폴란드전이 있던 날, 남편은 한국팀이 이기자 너무 기분이 좋은 나머지 동료들과 밤새 술을 마시느라 외박을 했다.
S씨는 “평상시라면 펄쩍 뛰었겠지만 우리가 이긴 날이라 용서가 되더라”고 말했다.
‘주부들이 저녁밥을 안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실제로 여의도에 사는 전업주부 K씨는 “한국전이 있는 날과 한강불꽃축제가 열리는 일요일엔 100% 저녁식사를 준비하지 않는다. 집에서 TV경기를 봐도 다른 때와는 달리 남편이 먼저 배달시켜 먹자고 제안한다. 같이 응원하면서 훈수도 두어가며 봐야 재미있다는 것이다. 때론 김밥과 간단한 음료수를 사서 한강고수부지 거리응원장소에 나가 경기구경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온 가족이 빨강색 붉은 악마 티셔츠를 차려 입고 거리 응원장을 찾는 것도 보기 흔한 풍경이다.
직장여성 L씨 가족은 ‘Be the Reds’라고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한국전때마다 광화문 거리응원에 나서는 것은 물론 웬만한 나들이에도 꼭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다닌다.
“싸구려 티셔츠 한장이지만 가족이 똑같이 차려 입었다는 것만으로도 가족애를 다질 수 있는 데다 다섯살짜리 아들에게 즐겁고 행복했던 추억을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아 부지런히 거리 응원장을 찾아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이성희 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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