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영전략 컨설턴트인 제임스 F. 무어는 저서 ‘경쟁의 종말’에서, ‘기업 생태계 (Business Ecosystem)와 공동진화’라는 새로운 기업 패러다임을 제시했다.기업을 둘러싼 환경은 생물학적 생태계처럼 유기적 결합체이기 때문에 기업은 끊임없이 환경변화에 맞춰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환경은 과거와 달리 산업계의 구분마저 모호해질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고 다른 많은 기업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의 책은 1998년 국내에 소개됐는데, ‘IMF체제라는 경제적 망국의 원인에 대한 속시원한 설명을 갈구하던 사람들에게 빠르게 공감대를 얻었다.
그는 오랫동안 고립적 생태계를 이뤄온 하와이와 남미와 북미를 잇는 코스타리카의 생태계를 비교하면서 치열한 경쟁이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지정학적 위치의 코스타리카 생태계가 변화에 더욱 뛰어난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의 비유는 IMF위기가 바로 하와이처럼 오랫동안 고립 상태를 유지해온 한국식 기업 생태계의 파괴과정으로 설명하는데 인용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생태계 이론으로 무장했던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이나 미국의 에너지 대기업 ‘엔론’의 몰락을 보면서, ‘무어’식 접근에 대해서도 한국이라는 일정 수준 독립된 생태계에는 또 다른 무엇이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IMF 이후 많은 국내기업들은 서구의 기업들처럼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러나 서구기업과 달리 그 목적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장기적 측면보다는, 대부분 당장의 재무적 목표에 급급했던 측면이 크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근시안적 구조조정 과정을 통해 우리 기업들을 오랫동안 결속시켜 왔던 구심점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은 한국식 경영 덕목이 사라진 공간을 서양식 합리주의에 바탕을 둔 조직관리기술이 메우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기존의 ‘우리’라는 한국식 덕목은 합리주의의 서구식 계약관계가 완전히 대체한 것일까 ?
결론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고 그 목표에 이르는 과정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오히려 시간적 제약이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변화하는 기업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IMF를 거치면서 이제는 국내 기업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외부 환경에 주목하는 서구적 기업생태계가 아니라, 조직 내부에 더 관심을 쏟는 한국적인 기업 생태계의 조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실천에는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지만 공동체로서의 동일한 비전(Vision)의 공유와 교육훈련을 통한 경험의 확대 재생산이 으뜸이라는 생각이다.
교육과 기업역량의 확대라는 선순환 메커니즘이야말로 내부 생태계를 통한 진정한 공동진화 모델이라고 본다.
현재 한국적 기업 생태계는 서구적 합리주의와 함께 ‘우리’라는 전통적인 가치가 함께 묶여지는 과도기적 과정이라고 본다.
이러한 과정에는 많은 논의가 필요하며 이 논의가 새로운 한국적 기업 생태계를 검토하는 계기를 마련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박헌강 세원E&T 사장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