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 주바이다의 세 치 혀 끝에 조롱당하던 미 정보기관이 모처럼 거둔 최대의 개가.”뉴욕 타임스는 12일 미국이 ‘더러운 폭탄’ 테러 기도범 호세 파딜라(아랍명 압둘라 알 무하지르)를 체포한 것은 오사마 빈 라덴의 최측근 참모인 아부 주바이다의 온갖 거짓 정보에 놀아나던 연방수사국(FBI)과 중앙정보국(CIA)이 고도의 심리전 끝에 이룩한 모처럼의 ‘쾌거’라고 보도했다.
3월 말 파키스탄 정부의 알 카에다 잔당에 대한 일제 소탕작전 과정에서 붙잡힌 주바이다는 미국에 신병이 인도된 뒤 현재 비밀 장소에서 일체의 외부 접촉이 금지된 채 취조를 받고 있다.
그런데 주바이다에 대한 미 정보요원의 취조 과정은 한 편의 첩보 영화를 방불케 하는 치열한 머리 싸움의 연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바이다로부터 알 카에다 조직과 후속 테러 정보를 캐내기 위해 미국은 FBI와 CIA의 정예 취조 요원 30여 명을 투입했다. 그러나 비상한 두뇌에다 철저한 반미주의로 무장한 주바이다 역시 노련하게 맞서고 있어 취조 요원들은 번번이 그의 헛정보에 속아 넘어갔다.
취조 요원들은 처음 체포 당시 복부와 다리 등에 치명적인 총상을 입은 주바이다를 정성껏 치료해주며 안심시키는 작전을 구사했다.
또한 신체적 고문도 가하지 않으며 정중히 대하자 줄곧 묵비권을 행사하던 주바이다는 조금씩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알 카에다 조직원들이 ‘더러운 폭탄’ 제조 기술을 익혔으며 미국에 대한 후속 테러를 준비 중이라는 정보 등을 빼낼 수 있었다.
주바이다는 이어 알 카에다가 미국 원자력발전소와 아파트, 은행, 주유소, 대형 상가 등에 폭탄 테러를 계획 중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취조 요원들은 그의 이 같은 진술에 반신반의하면서도 상부에 보고했고 백악관 등은 즉시 이를 발표, 후속 테러 공포 분위기가 미 전역에 감돌았다.
그러나 주바이다의 이 같은 정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카에다의 건재를 과시하기 위해 다소 과장됐거나 미국에 심리적 타격을 주기 위한 허위진술이라는 의심을 받으며 신뢰성이 떨어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주바이다의 역정보에 미국 정부와 언론만이 호들갑을 떨었던 셈이다.
한 취조 요원은 “주바이다는 매우 치밀하고 교활한 인물”이라고 전제하고 “우리는 그의 진술을 모두 믿지않았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테러 경계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무리 용의주도한 그였지만 미국의 베테랑 취조 요원의 허허실실작전에 조금씩 말려들면서 본의아니게 실낱 같은 단서들을 제공했다.
취조 요원들은 “알 카에다는 정말 잘 훈련된 빼어난 조직”이라며 주바이다를 추켜세웠는데 이에 고무된 그가 알 카에다 조직의 방대함 등을 자랑하다 그만 실수로 몇 가지 정보를 내뱉었던 것이다.
파딜라의 신원이 확인된 것도 주바이다가 “우리는 더러운 폭탄을 제조할 능력이 있고 실제로 이를 실행에 옮길 전사들이 여럿 있다”고 뽐내던 말이 결정적 단서가 됐다.
그러나 주바이다의 두뇌 역시 만만치 않아서 두 달이 넘는 지루한 실랑이 끝에 미국이 주바이다로부터 빼낸 가치 있는 정보는 파딜라 신원을 확인한 것과 9ㆍ11 테러의 실무 총책이 쿠웨이트 출신인 칼리드 사이크 모하메드라는 것 등 단 두 가지에 불과했다.
미 정보기관은 주바이다가 전세계에 산재한 알 카에다 조직의 전모를 파악하고 있다고 보고 당분간 비공개 취조를 계속할 방침이다.
■주바이다는 누구
주바이다(30)는 지금까지 검거된 알 카에다 조직원 중 최고위 인사로서 빈 라덴의 수석 참모로 알려져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태생의 팔레스타인인이라는 것 외에는 거의 알려진 게 없다.
그는 3월 말 파키스탄 정부의 알 카에다 일제 소탕 작전에서 동료 50여 명과 함께 파이살라바드에서 붙잡혔다.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당시 “주바이다는 알 카에다에서 서열 2위이거나 이에 상당한 인물”이라며 “그는 빈 라덴의 지령에 따라 테러작전을 수립하고 현장의 세포조직들과 접촉, 이들을 지휘해 온 인물”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 정보기관은 특히 그가 아프가니스탄에 있던 알 카에다의 테러 훈련소를 관할했음을 확인하고 그의 머리 속에는 세계 각 지역의 조직 체계와 세포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을 것으로 보고있다.
그는 또한 사라예보 주재 미 대사관 폭파사건을 총지휘하는 등 유럽 지역의 테러와 연계돼 있으며 여러 개의 여권과 가명을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윤승용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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