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조세희씨는 재개발지역의 세입자 가족과 그 집에서 마지막 식사를 했다. 밥을 먹는데 철거반이 철퇴로 대문을 부수며 들어왔다.철거반과 싸우다 돌아오면서 조씨는 노트를 샀다. 그의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그 노트에 씌어지기 시작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150쇄를 돌파했다. 13일 서울 인사동의 음식점에서 만난 조세희씨는 “환갑을 맞은 내게 의미있는 소식”이라고 말했다.
‘난쏘공’으로 알려진 이 소설은 그가 1965년 신춘문예로 등단한 뒤 10년의 침묵 끝에 발표했던 작품이다.
1970년대 후반 도시 노동자 난쟁이 가족의 고된 삶을 그린 이 소설에서 멸시에 지친 난쟁이 아버지는 집이 철거되자 공장 굴뚝에서 떨어져 죽는다.
큰아들은 노동운동을 하다가 기득권의 높은 벽에 좌절하고 기업주를 살해, 처형되고 만다. 산업화의 시대에 소외된 도시 빈민층은 조씨에게 모두 ‘난쟁이’였다. 출판사를 다니던 그는 서울 한복판 고층 사무실에서 창 밖을 내다봤다.
“한국이 보였다.” 재벌의 횡포, 성장제일주의, 부동산 투기. “글쓰는 것을 포기했던 나는 ‘일할 시간’이 왔다는 것을 알았다.”
1975년 ‘문학사상’에 첫선을 보였던 ‘난쏘공’ 연작은 78년 6월 문학과지성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되기까지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 ‘문예중앙’은 물론 대학신문에까지 실렸다. 70, 80년대 젊은이들은 이 책으로 한국 사회의 모순에 눈뜨곤 했다.
‘난쏘공’ 후 조씨는 다시 침묵했다. 가혹한 체제에게 빼앗긴 문학의 언어를 찾아 모으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대신 그는 발전노조 대우자동차 노조 등 노동운동 현장을 찾았다. ‘난쏘공’에서 그렸던 민중의 열망을 계속해서 느끼고 싶은 마음이었다.
구로공단에서 만난 한 소녀가 그에게 선물을 주었다. 시든 꽃 한 송이와 따뜻한 쇳덩어리. 집회에서 만난 한 학생이 “제발 글을 써 주십시오”라면서 조씨의 두 손을 잡았다.
그렇건만 조씨의 문학행보는 지금도 더디다. 87년 ‘월간중앙’에 연재를 시작했다가 중단한 ‘하얀 저고리’를 8월에나 세상에 내보낼 계획이다.
121세 아침이라는 이름의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인 ‘하얀 저고리’는 맞아서 피 흘리는 사람들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떠도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80년 5월에 죽은 사람들이다. “전국을 다니면서 작품 자료를 수집하던 중 전해 오는 얘기를 들었다. ‘산 자들이 싸우지 않으면 죽은 자들이 싸우러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하얀 저고리’는 그 죽은 자들의 통곡이고 싸움이라고 조씨는 말한다.
조씨는 문인의 삶을 시작하면서 “평생 원고지 3,000매 이상은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작가가 능력을 모두 발휘해 넣을 수 있는 분량은 이 정도라고 그는 생각한다. ‘난쏘공’은 1,400매, 나머지는 ‘하얀 저고리’에 담을 것이라고 조씨는 말한다.
월드컵으로 전국이 들떴지만 그는 축구를 보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도 TV가 없어 축구를 볼 수 없는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축구를 볼 수 없다.”
그러나 붉은 악마 응원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붉은 색은 결코 죽지 않는 색이다. 내 작품의 주인공도 ‘붉은 가슴을 가진 사람’이라고 묘사했다”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난쏘공’은 2000년 이성과힘 출판사로 판권을 옮겼으며 지금까지 모두 60만5,500부가 팔렸다. 조씨는 이 시대가 여전한 난쟁이의 세상이라고 믿는다.
“난쟁이의 세상에서 문학이 지켜나가야 할 자존심과 명예가 있다. 이 세상에서 문학이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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