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고백하자면 월드컵이 시작되기 직전까지도 난 왜 일개(?) 축구대회때문에 대한민국 전체가 들썩거리는지 전혀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참, 유치하기도 하지, 다 큰 남자들이, 골대에 공 차 넣는 단순한 놀이에 저렇게 목숨 걸듯 난리를 치다니….
2주일이 지난 지금? 남의 나라 경기까지 열심히 보고 있긴 해도 갑자기 광적인 축구팬이 되었다고까지는 말 못하겠다.
하지만 축구경기의 매력이 나름대로 이거구나 짐작하는 수준은 된 것 같다. 엄밀히 말하자면 경기 자체의 즐거움이라기 보다는 승패를 둘러싼 인간심리의 이모저모를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고나 할까.
아무튼 월드컵은 내가 좋아하는 TV프로 ‘인간극장’의 국제판으로 불러도 손색없는 인간드라마의 현장이다.
1. 영원한 승자는 없다
1998년 월드컵 이후 계속되는 승리에 취해 있던 프랑스팀을 쓰러뜨린 건 결국 자신감이 아닌 자만심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자신감과 자만심 사이의 경계선은 어디일까. 이걸 절묘하게 넘어다니며 스스로를 다스리는 것이 성공의 비결은 아닐까.
2. 언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
명해설자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차범근씨가 4년 전 월드컵 도중 대표팀 감독자리에서 쫓겨나 급거 귀국했던 장본인이며, 그에게 이런 치욕을 안겨주었던 장본인이 히딩크 감독임을 생각하면 인연이란 정말 묘한 것이다.
3. 구박받던 자식이 효도한다
자기나라 대통령이 게임 시청도 안했음을 고백한 미국팀이 의외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심리적 부담감이 적어서 일까. 암튼 자식농사건 축구농사건 꼭 공들인 만큼 거둬들이는 건 아닌 것 같다.
4. 머피의 법칙
스포츠편 미국전이 있었던 날 새벽 박세리는 우리 국민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맥도날드컵을 거머쥐었다. 그렇게 기도했던 미국전은 무승부로 끝나고…
5. 세상에 공짜란 없다
오노가 김동성의 금메달을 할리우드 액션으로 뺏어갔을 때 4개월 후 전세계 팬들앞에서 한국 선수들의 골 세레모니로 공개 망신을 당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으리라. 반미감정으로 미국계 기업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봐도 마찬가지다.
6. 국경이 허물어지고 있다
세네갈 선수들은 사실상 프랑스리그 선수들이고, 유럽 선수들에겐 유럽 전체가 활동 무대이다.
우리나라 선수들 중에도 일본, 이태리, 벨기에팀 소속이 있다. 글로벌 빌리지는 축구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7. 외부의 적은 최고의 접착제
한국인들을 하나로 묶어준 것은 16강이 되기 위해 넘어야할 세 나라팀이었다. 미국인들의 애국심이 9·11 테러 이후 강해진 것도 결국 외부의 적이 있을 때 사람들은 쉽게 뭉친다는 사회심리학의 이론을 확인시켜준다.
/이덕규ㆍ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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