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3일 꼭 투표하세요 - 장나라와 함께 참여하는 투표참여 이벤트”(중앙선거관리위원회)“6월 13일 ①번 찍고 축구보세요 - 당신의 소중한 한 표가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듭니다”(한나라당)
“꼭 투표하고 월드컵 봅시다 - 꼭 찍자 민주당! 꼭 가자 8강으로!”(민주당)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모두가 월드컵 축구에 엄청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중앙선관위는 이벤트에 참여하여 투표율을 높일 수 있는 의견이나 하고 싶은 말을 남겨준 사람들을 대상으로 1,200명을 추첨하여 장나라 티셔츠, S.E.S의 선거이야기 만화, 최신 인기가요 CD 등 푸짐한 선물공세까지 하고 나섰다.
실제로 이번 선거만큼 투표율의 저하가 우려된 적은 없었다. 지방선거는 완전히 월드컵 열기에 파묻혀 버렸다. 전국민이 경기장으로, 광화문으로, TV 앞으로 몰려들어 열광을 보였다.
광화문의 40만 인파는 1986년의 6월 항쟁에 참여하거나 목격한 시민들에게는 특별한 감회를 자아냈다. 그 이후 처음 보는 대규모 군중이고 열기이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지방선거는 후보끼리는 열전인데 국민들은 냉담하다.
따지고 보면 히딩크 감독 영입 이후 한국축구는 눈부시게 발전해 왔다. 월드컵 직전 몇 차레의 평가전을 통해 한국축구 발전의 진면목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그 발전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최근에서야 우리는 알았다. 짧지 않은 기간동안 선수들과 감독은 한 몸이 되어 고된 체력훈련과 쉼 없는 땀방울을 쏟았던 것이다. 국민의 인기를 받을만하지 않은가.
그러나 정치권은 어떠했는가. 날이면 날마다 서로를 헐뜯으며 세월을 보냈다. 여당은 부패했고 야당도 건설적 대안을 내지 못했다.
정치권에서 어떤 혁신도, 발전도 국민들은 발견할 수 없었다. 정치에 대한 혐오감과 불만이 누적되었다. 히딩크 같은 감독도, 스타 플레이어도 없었다. 투표율 저하를 어찌 우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어쩌랴. 그라운드에 뛰는 선수들을 교체하지 않고서는 좋은 경기를 기대할 수가 없다. 유권자들에게는 관심 없고 이권이나 챙기고 국정에 대한 관심이나 대안을 갖지 못한 정치인은 갈아치울 수밖에 없다.
민선2기 출범 이후 지방자치단체장 267명 가운데 지난 3월말까지 현재 각종 비리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이 1기 때의 23명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어난 40여명에 달했다.
이들의 반 이상이 뇌물수수, 정치자금법 위반, 배임 등 각종 이권개입과 관련되어 있다. 특히 이미 구속되거나 검찰수사를 받고 있는 광역단체의 장은 5명으로 전체의 3분의 1에 달했다.
지방자치단체가 이들 사악한 공직자들의 부정한 이권 사냥과 사익 추구의 그라운드로 변한 것이다. 이렇게 파울플레이를 한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당연히 쫓겨나야 한다.
선거는 바로 부정한 선수를 쫓아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겨우 4년만에 딱 한번 가지는 기회다. 과연 그 후보자가 당선된 후 파울플레이를 할 것인지 아니면 청렴하게 공직을 수행할 것인지 판단하는 일은 쉽지 않다.
집으로 보내온 선거공보를 다시 들여다보고 나아가 선관위, 전문가, 시민단체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공약과 정책, 전과와 병역사항 등 후보자에 관련한 각종 정보와 평가들을 접한다면 차별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선거기간에도 불법선거를 자행한 후보가 적지 않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선거사범이 4년 전에 비해 14배가 증가했다는 보도도 있다.
내 지역의 후보가 그런 선거법을 위반한 적이 없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오가며 조금만 유심히 관찰해 보면 누가 돈 더 많이 쓰는지 알 수도 있다.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어디 주권자 노릇하기가 쉬운 일인가. 누구를 찍든, 투표하고 축구 보러 갑시다.
/박원순 참여연대 상임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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