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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기자의 컷] 과거 좀 묻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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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기자의 컷] 과거 좀 묻지 마세요

입력
2002.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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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키’.“너 이거 가짜지” 고교 1년 때 하늘색에 푸른색 슬래시가 붙은 운화를 신고 학교에 다닌 적이 있는데, 이 메이커를 신은 사람으로는 학교에서 유일했던 탓에 아이들은 하교하는 나를 잡고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이럴 땐 그저 ‘쓱’ 미소 한 번. 그 때의 의기양양이란.

‘네 나이키’.

운동화가 문제가 된 것은 대학 때. 시대가 요구한 대학생의 드레스 코드는 후줄근함이었다. 때문에 엉덩이에 말이 그려진 청바지나 슬래시가 그려진 운동화는 ‘공공의 적’이 됐다.

‘우리의 나이키’.

이제 그 슬래시가 그려진 운동화는 추억의 상품이 됐다. 중편 모듬 영화 ‘묻지마 패밀리’, 지난 주말 전국서 50여만 명의 관객을 모은 ‘해적, 디스코왕 되다’는 모두 우리의 80년대를 추억한다.

‘묻지마 패밀리’중 가장 대중적 반응이 좋은 ‘내 나이키’에서는 결핍의 상징으로 나이키에 대한 열망을 꼽았다.

노랑과 빨강의 줄무늬 배경에 반짝이 드레스, 아줌마 퍼머 머리가 나오는 독특한 포스터가 매력적인 ‘해적, 디스코왕이 되다’.

그러나 80년대를 추억한 영화에 대해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 한마디로 80년대에는 젖병이나 빨고 있던 세대와 그래도 그 시기에 책이라도 몇 줄 읽을 만큼 어느 정도 성장해 있던 20대 후반 세대들의 반응은 영 다르다.

20대 초반들에게 80년대란 요즘 유행하는 키치 패션의 원류가 되는 시대였고, 친구들끼리 떼로 몰려 다니며 즐겁게 노닐던 바로 그런 시대였다. 그래서 그들은 즐겁게 영화를 즐긴다.

그러나 이후 세대에게 80년대는 좀 다르다.

박정희 대통령 사망 소식에 목놓아 우는 것으로 70년대를 마감했고, 이어 계엄사령관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사람인 줄 알았으며, 광주에서 ‘빨갱이’들이 난동을 피우는 것으로 알았던 기만의 세월을 보냈던 그들이었기에 그들은 이미 사춘기에 세상에 대한 불신과 자기 모멸감을 알았다.

때문에 엄마 몰래 소주도 아닌 ‘양주’를 들이키는, 나이트 클럽을 오락실 가듯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세상에 고민이라고는 봉자를 구하는 것 밖에는 없는 그들에게 거리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해적…’을 보고 나면, 마치 기억 속의 첫사랑 소녀가 “아줌마 젊었을 때 예뻤겠다”는 소리에 희희낙낙하는 아줌마로 변한 모습을 보는 듯, 조금 화가 난다.

아 고생하는 80년대. 우리도 그 때 고생 좀 했으니까 너무 억울해 하지는 마.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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