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싱가포르에서 근무했던 한 외교관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1980년대 초였는데, 현지신문에 난데없이 ‘한국, 군인을 해외 건설현장에 보냈다’는 기사가 실렸다.당시 전두환 정권에 대해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이라며 해외여론의 시선이 곱지않았던 터에 말도 안되는 기사가 실렸으니 대사관이 발칵 뒤집혔다고 한다.
당연히 정정기사를 내달라고 문제의 신문사로 뛰어갔는데, 알고 보니 오보의 발단은 축구였다.
■ 그 얼마 전에 국제 청소년 축구대회가 있었다. 싱가포르에서 대형 건설사업에 참여하고 있던 한국 건설업체들은 단체로 표를 구입했고 한국팀이 경기하는 날, 근로자들이 단체로 스타디움에 나타났다.
그리고 스탠드를 4분의1 가량 메운 근로자들 앞에 몇 명이 뛰쳐나와 응원을 끌고가기 시작했다.
‘삼삼칠 박수’와 ‘기차 박수’를 기본 메뉴로 해서 이뤄진 응원은 손발이 척척 맞아떨어지며 일사불란하게 이뤄졌고 급기야 축구경기를 취재 온 현지기자들을 놀라게 했다.
■ ‘여러 회사의 근로자들이 갑자기 모여 저렇게 응원할 수는 없다’는 의문을 가진 한 기자가 심층취재에 들어갔다. 다음날 건설현장에 가보니, 우리 근로자들은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운동장에서 조회를 갖고 있었다.
태극기를 걸어놓고 국민의례를 하면서 거수경례를 하고 애국가를 부르는 등 그의 눈에는 영락없는 군인의 모습이었다.
그 때문에 그는 오보를 냈지만, 며칠 뒤에는 오히려 ‘한국인의 단결력은 세계 최고’라는 취지로 우리 국민성을 극찬하는 정정기사를 썼다.
이를 본 리콴유(李光耀) 당시 수상도 “한국인을 배우자”고 내각에 지시했다고 한다.
■ 이제 ‘삼삼칠 박수’와 ‘기차 박수’는 ‘대~한 민국, 짝짝 짝 짝짝’에 완전히 밀려났다. 월드컵을 계기로 전국을 뒤덮고 있는 ‘붉은 함성’은 한민족에 내재된 단결력을 한 차원 높였다.
군사문화의 잔재인 획일성에 묻혀 제 빛을 발하지 못했던 과거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느낌이다. 집단에 매몰되지 않으면서도 개성을 마음껏 표출하는, 한국인 특유의 ‘신바람 문화’가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정말 ‘오, 필승 코리아’다.
신재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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