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월드컵에서 한국과 네덜란드 경기가 벌어진 1998년 6월20일 마르세이유. 전날 그곳에 도착해 아침에 눈을 뜬 붉은악마들은 바깥을 내다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도시가 온통 오렌지 색으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오렌지색 유니폼을 입은 네덜란드의 젊은 청년들 뿐만 아니라 양복, 모자, 심지어 넥타이까지 오렌지색으로 치장한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에 붉은악마들은 놀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러니 오렌지색으로 변한 마르세이유를 보고 한국대표 선수들은 오죽했을까.
4년 뒤인 2002년 6월. 이번에는 월드컵 공동개최국 한국이 한반도를 붉은 색으로 물들이며 세계인을 놀라게 하고 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거리에서 국민들은 모두 붉은악마로 변했다. 대표팀 유니폼 그 자체를 입거나, 그 색깔인 붉은 셔츠를 입고 12번째 선수가 됐다.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 국가적인 집단의식을 월드컵을 취재중인 세계 각국의 특파원들은 이렇게 묘사했다.
“수십만 명이 붉은 옷을 입고, 같은 노래와 구호를 외치는 데서 평화와 순수를 느꼈다” “서울 광화문과 시청 앞의 붉은 물결은 감동, 그 자체였다”고.
10일 한국과 힘겨운 무승부를 기록한 미국팀의 브루스 어리나 감독은 “한국의 전국민을 상대로 경기를 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할 정도였다.
한국민은 선수들의 붉은 유니폼 색깔로 하나가 된 저력과 단결력을 세계에 과시했고, 또 세계는 그것을 칭송했다.
온 국민이 대표팀과 같은 유니폼이나 색깔의 옷을 입고, 일체감으로 성원을 보내는 응원문화는 한국과 네덜란드만의 것은 아니다.
푸른 유니폼의 우르과이는 응원구호마저 ‘나는 하늘색이다(Soi Celeste)’로 국민 모두가 하늘색 아래 하나가 된다는 뜻이다. 공동개최국 일본 역시 국가대표 경기에는 서포터스인 ‘울트라 닛폰’이 파란 색으로 경기장을 바다로 만든다.
그러나 오랜 축구전통을 자랑하는 유럽의 경우, 전국민이 대표팀과 같은 색으로 일체가 되는 응원문화를 갖고 있는 나라는 의외로 많지 않다.
흰색의 독일이나 검붉은 색의 포르투갈 같은 축구선진국에서는 프로축구 클럽문화가 더 강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온 국민이 붉은 색으로 하나가 된 우리의 응원에 그들이 놀라워하고 부러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산과 강의 경계를 허물고, 갈등과 미움조차 털어버리게 만들며 한국민을 한마음으로 묶어주는 붉은 색. 포르투갈과 예선 마지막 승부를 겨뤄야 하는 14일 인천에서 또 한번 그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정진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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