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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과 책] 복거일 '세계 환상소설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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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글과 책] 복거일 '세계 환상소설 사전'

입력
2002.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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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은 읽기 위한 책이 아니라 찾아보기 위한 책이다.영어사전을 통째로 외웠다는 수재들의 괴담이 믿거나 말거나식으로 중고등학교 영어 시간에 회자되기는 하지만, 사전을 읽는 것이 평범한 독서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기자의 기억이 옳다면, 문학평론가 염무웅씨는 젊은 시절 국어사전을 읽는 기쁨을 소재로 수필을 쓴 적이 있다.

해직 시절의 그는 잠자리에서 국어 사전을 읽는 버릇을 들였는데, 이런 별난 취미 덕에 자신이 그 전까지 같은 뜻으로 써왔던 ‘오로지’와 ‘애오라지’가 다른 뜻의 부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스물을 갓 넘어서 그 글을 읽은 기자는 그 뒤로 염무웅씨의 그 취미를 본떠보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국어사전이나 영어사전은 좀 극단적인 경우고, 분야별 술어사전 같은 것은 충분히 독서의 대상이 될 만하다.

예컨대 ‘기호학 사전’(이화여대 기호학연구소 옮김ㆍ우석출판사 발행)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프랑스 학자 뒤크로와 토도로프의 ‘언어과학 백과사전’ 같은 책은 참고서이면서 그 자체가 독서를 위한 책이기도 하다. 이런 종류의 사전들은 흔히 해당 분야의 입문서 역할을 한다.

소설가 복거일씨가 최근에 펴낸 ‘세계 환상소설 사전’(김영사 발행)도 이런 부류에 속할 것이다.

표제도 사전이고 각 챕터별 구성도 사전 형식을 취하기는 했지만, 이 책은 보기에 따라서 환상소설 사전이라기보다 환상소설 입문서에 가깝다.

저자는 흔히 판타지 소설이라고 불리는 환상소설의 성격, 영역, 역사를 자상하게 설명한 뒤, 김만중의 ‘구운몽’을 비롯해 자신이 환상소설로 분류한 한국어 문학작품들에 대해 간략한 비평적 접근을 시도한다.

곁들여 환상소설에 자주 나오는 용어들도 해설하고, 일반 독자들이 읽을 만하다고 자신이 판단한 작품들을 추천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세계 환상소설 사전’은 참고용 책이면서 독서용 책이다. 기자도 이 사전을 일반 책 읽듯 처음부터 끝까지 내리 읽었다.

물론 제6장을 이루는 작가와 작품 리스트는 대충대충 보며 건너 뛰었다. 환상소설을 거의 읽어보지 않은 기자에게 거기 나열된 고유명사들이 너무 낯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다른 부분은 매우 흥미로웠다.

특히 최인훈의 ‘구운몽’과 이우혁의 ‘퇴마록’,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 등의 해설을 포함하고 있는 제9장 ‘한국의 환상소설’이 그랬다.

국내외의 환상소설에 익숙한 독자들이라면, 제6장을 포함해 사전 전체가 읽을 만할 것이다.

급진적인 영어공용화론으로 많은 비판을 받은 바 있는 복거일씨의 한국어 사랑은 이 책에서도 여전히 도탑다.

문체는 단정하고, 고유명사를 제외하면 외래어를 찾아보기 힘들다. 복거일씨는 글을 쓰며 유럽산(産) 외래어를 거의 노출시키지 않는 매우 드문 한국어 저자다.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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