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전이 12일로 막을 내린다. 지난 달 28일 개막돼 16일간 진행된 이번 선거전을 결산해 본다.■ 대선 예비전 격하
각 당은 초반부터 대통령 후보들간의 직접 대결 구도로 선거를 이끌어 끝까지 이 기조를 유지했다. 이에 따라 풀뿌리 민주주의 구현이라는 지방선거의 의미가 대선 예비전 수준으로 격화됐다는 비판이 무성하다.
지방선거 성적이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민주당의 경우 대선 후보 재신임에까지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상황은 어느 정도 예견됐었다. 그러나 각 당이 지나치게 대선을 의식해 대통령 후보들에 대한 비방과 흠집내기에 열중, 선거판이 혼탁해 지는 등 부작용이 매우 컸다는 지적이다.
■ 정책 실종 네가티브 극성
각 당은 선거전을 시작하면서 저마다 정책선거를 치르겠다고 다짐했지만 남은 건 네가티브 공방전뿐이라는 평가다. 정책은 실종됐고 후보들의 약점과 검증하기 어려운 의혹 등이 선거판을 흐렸다.
각 당은 저마다 “후보들에 대한 정당한 검증”이라고 포장했다. 하지만 물증 없는 ‘아니면 말고’식의 무차별 폭로와 법적 대응, 시민단체 등의 객관적 평가에 대한 아전인수적인 해석 등 고질병들이 어김없이 나타났다.
금품ㆍ타락 선거 심화 선관위에 따르면 이번 지자제 선거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밑바닥 현장의 타락과 혼탁이 심했다. 정치자금을 만드는 일이 어려워졌기 때문인지 중앙당 차원의 ‘실탄’ 살포는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는 게 일반적인 평이다. 선관위가 1998년 지방선거기간 중 적발한 불법선거행위는 1,118건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지난 달 28일부터 8일까지 1,537건이나 적발됐다.
■ 극에 달한 유권자 무관심
각 정당과 후보들은 유권자들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 정당연설회, 거리유세, 광고 등 법이 보장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이를 철저히 외면했다. 대부분의 정당 행사장과 주말의 후보 합동연설회장은 동원된 관중으로 채워졌을 뿐 썰렁함 그 자체였다.
선거 기간이 월드컵과 겹친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국민의 정치 무관심ㆍ혐오가 더욱 심해진 결과라는 분석이 설득력이 있다. 사상 최악의 투표율에 따른 당선자들의 주민 대표성 시비 등 후유증도 우려된다.
■ 종잡기 어려운 지역색
이번 선거를 되돌아보면 표면적으로는 지역색이 많이 완화된 것처럼 느껴진다. 각 당 텃밭에서의 이변 가능성을 보여주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와 정당 판세 분석이 그 근거다. 수도권 영ㆍ호남 충청출신 유권자들의 응집력이 이전보다 훨씬 약해졌다는 평가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실제 선거운동 개시 전까지만 해도 이번 선거를 통해 지역색 변화의 싹이 보이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조심스럽게 제기됐었다. 영남권의 ‘노풍(盧風)’, 충청권의 자민련 정서 변화 조짐, 호남권의 반 민주 기류 확산이 요인이었다.
그러나 각 당의 후보 공천 결과는 이런 예상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한나라당은 호남, 민주당은 영남에 거의 후보를 내지 못했다. 각종 비리ㆍ부패로 인한 반DJ정서까지 악재로 작용, 민주당의 영남 공략은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 무소속 진보정당 선전
선거기간 내내 진보정당과 무소속 후보들의 선전이 눈에 띄었다.
민주노동당 후보들의 경우 노동자세가 강한 울산에서 유독 강세를 보였다. 민노당은 각종 여론조사의 정당지지도 부분에서 자민련보다도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어 정당득표를 통한 광역 비례대표 진출도 가능할 전망이다.
무소속 후보들은 영ㆍ호남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선전했다. . 지역색, 유권자의 보수 정서 등이 변수로 남아 있어 이들의 당선까지 장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기존 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불신과 염증이 극에 달해 있음은 이들의 선전으로 충분히 입증됐다.
■ 월드컵 변수
투표율과의 함수관계, 우리 팀의 성적에 따른 정당별 득실 등 월드컵은 이번 선거의 중요 변수 중 하나다. 선거운동에도 월드컵은 큰 영향을 미쳤다. 월드컵 응원가는 선거캠페인송 채택 순위 1위였고, 축구 전용구장 마련 등 월드컵 관련 공약을 급조하는 후보들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16강 진출이 13일 전에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 어느 정당에 유리하게 작용할지는 월드컵과 관련해 마지막 남은 관심거리다.
■ 위력없는 민ㆍ자 공조
선거전 개막 직전 민주당과 자민련이 수도권과 충청권 공조에 전격 합의하자 정치권은 손익 계산에 분주했다. 그러나 선거 과정에서 공조는 매우 불안정하게 이뤄졌고, 위력도 별로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도권에서 효험을 기대했던 민주당이나, 충청권에서의 약효를 내다봤던 자민련 모두 공조의 효과를 반신반의하는 모습이다. 오히려 한나라당은 “수도권 충청 출신 표는 우리편”이라고 주장한다.
■ 명암 드러낸 사이버 선거전
인터넷 등 사이버 공간에서의 선거전이 다른 어느 때보다도 광범위하고 치열하게 펼쳐졌다.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후보가 선거전 종반에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동영상 메시지를 띄우는 것으로 영ㆍ호남 유세를 대신한 게 대표적인 예. 그러나 사이버 흑색선전 등 부작용도 커져서 선관위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신효섭기자
h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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