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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호기 네번째 시집 '수련'…수련은 詩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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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호기 네번째 시집 '수련'…수련은 詩와 같다

입력
2002.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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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은 한낮에 피었다가 저녁에 오므라든다. 수련(睡蓮)이라는 단어의 ‘수’는 ‘물 수(水)’가 아니라 ‘잠잘 수(睡)’이다. 짧은 순간 눈부시게 아름다운 꽃을 피고 사라진다. 숙명적이다.시인 채호기(45)씨가 네번째 시집 ‘수련’(문학과지성사 발행)을 펴냈다. 수련에 관한 연작시 64편을 묶은 것이다.

그는 4년 동안 수련 연작을 써왔다. 왜 수련일까.

“어느날 물 위에 떠 있는 수련을 보았다. 다른 꽃들은 잎과 줄기를 모두 공기 중에 드러낸다. 수련은 오로지 꽃잎만을 띄운 채 나머지 몸을 감춘다. 나는 수련의 모습이 시(詩)와 같다고 생각했다.”

언어는 인간과 만나는 순간 언어 자체의 의미를 감추고 이미지를 띄운다.

사람들은 ‘전화’라는 단어를 보고 곧바로 전화라는 기기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채호기씨는 수련에 관한 시들이 “수련과 언어의 경계를 지우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상과 언어의 경계를 지우고 하나가 되려는 처절한 몸짓은 ‘지독한 사랑’이다. 그 몸짓은 ‘몸의 시인’으로 불려온 그가 첫 시집 ‘지독한 사랑’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온 사랑의 행위다.

‘새벽에 물가에 가는 것은 물의 입술에 키스하기 위해서이다/ 안개는 나체를 가볍게 덮고 있는 물의 이불이며/ 입술을 가까이 했을 때 뺨에 코에/ 예민한 솜털에 닿는 물의 입김은 氣化(기화)하는 저 흰 수련의 향기이다.’(‘물과 수련’에서). 물 위에 뜬 하얀 꽃, 수련의 이미지를 종이 위로 가져오면서 채씨는 꽃과 말의 간극을 무화하는데 온 힘을 기울인다. ‘수련이 익사하지 않게 물 밖으로 건져내야 할 텐데…/ 저 흰 수련이 종이 위에서 필 수 있을까?’(‘물과 종이’ 부분) 시인은 이 고단한 작업을 거쳐 ‘육질의 수련’을 얻는다. 그래서 시인의 시로 옮겨진 수련은 ‘꽃 피는 식물이 아니라 물의 반죽’이고, ‘부유하는 날카로운 언어에 걸려/ 파들파들 떠는 물의 근육들’이다.

마침내 육감적이고 관능적인 수련의 몸을 찾아내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시인의 꿈이다. “처음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겠지만, 불가능을 소망하는 것 또한 시인의 숙명”이라고 채씨는 말한다.

그는 시를 통해 사랑하는 수련과 하나가 되기를 꿈꾼다.

‘나는 물가에 서서 수련 쪽으로 머리를 묻는다./ 그대의 흰 손이 내 머리카락에서 피어난다/ 그대의 흰 손이 내 이마에서 피어난다./ 그대의 온기가 목덜미를 타고 온몸으로 파문진다./ 물처럼 푹신한 그대의 가슴에 머리를 묻는다.’(‘그대의 흰 손’에서).

채씨가 평론가 김병익씨의 뒤를 이어 문학과지성사의 사장으로 취임한 지 2년째다.달라진 게 무어냐고 물었다.

“무엇이든 숫자로 생각하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전에는 책의 내용이 좋은지 그렇지 않은지를 따져 봤다. 그런데 지금은 먼저 숫자로 생각한다. 제작비, 예상 매출, 손익분기점… 언젠가 기획회의 때 출판 계획을 이렇게 숫자로 설명을 했더니 김주연 선생이 웃더라. 정말 사장이 됐다면서.”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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