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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신화] (7) 동방 서방 북방의 신들 복희(宓犧)소호(少昊)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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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신화] (7) 동방 서방 북방의 신들 복희(宓犧)소호(少昊)전욱

입력
2002.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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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의 신 황제와 남방의 신 신농이 대륙의 주도권을 두고 라이벌 관계였다면 동방 서방 북방을 다스렸던 신들은 누구인가. 먼저 동방을 다스렸던 신은 복희(伏犧)라고 부른다. 복희는 문헌에 따라 혹은 포희라고 쓰여져 있기도 하다.복희라면 앞서 인류의 탄생 신화에서 이야기했던 복희ㆍ여와 남매를 떠올릴 것이다. 원래 복희와 여와는 독립적으로 존재했던 신들이었다.

복희ㆍ여와가 남매 혹은 부부관계로 합해지는 것은 대체로 한(漢)나라 이후의 일이다. 그러니까 동방 신으로서 복희는 남매로 간주되기 이전의 원시적인 존재이다.

◈ 동방-복희

용, 뱀몸에 사람머리…천상-지상 매개 '무당'

중국의 먼 동쪽 변방에 화서씨(華胥氏)라는 종족이 살고 있는 아름다운 나라가 있었다. 어느 날 이 나라의 왕녀가 뇌택(雷澤)이라는 숲에 놀러갔다가 거인의 발자국을 발견하였다.

왕녀는 호기심에 큰 발자국에 자기의 작은 발을 살짝 디뎌보았다. 순간 그녀는 마치 감전이라도 된 듯이 몸에 무언가가 느껴졌다. 이후 그녀는 임신을 하였고 마침내 복희를 낳았다.

복희의 아버지라 할 뇌택의 거인은 뇌신(雷神)이었다. 뇌신은 용의 몸에 사람의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그 혈통이라서 그런지 복희는 용의 몸 혹은 뱀의 몸에 사람의 머리였다고 한다.

복희는 인류를 위해 큰 일을 많이 한다. 끈으로 그물을 짜서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쳤고 그를 보좌하는 신인 구망(句芒)도 새그물을 만들어 새 잡는 법을 가르쳤다. 복희는 농업을 발명한 신농에 비해 조금 일찍 등장한 수렵시대의 문화영웅일 것이다.

복희의 가장 큰 공적은 팔괘(八卦)를 만든 것이다.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 의하면 복희는 위로 하늘의 천체를, 아래로는 땅의 지형을 살피고 사물의 빼어난 모습을 고려하여 팔괘를 만들었는데 이것으로 신의 원리와 통하고 만물의 이치를 설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걸 보면 복희는 천상과 지상을 매개하던 무당과 같은 존재가 아니었던가 싶다.

팔괘는 음과 양의 두 가지 기운을 표시하는 --과 ―의 부호에 의해 하늘 땅 물 불 산 천둥 바람 늪의 8가지 자연현상을 각기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결국 팔괘는 우주 만물의 모든 현상을 상징하는 부호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팔괘가 배합되어 나타난 점괘를 읽으면 인간의 길흉화복을 모두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복희의 자손은 주로 서남쪽의 파(巴)라는 종족이 되었다. 파국(巴國)의 시조 늠군이 복희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복희의 딸 복비(宓妃)는 낙수(洛水)를 건너다 물에 빠져 죽었는데 낙수의 여신으로 거듭 태어났다.

복희가 중국의 동쪽 먼 나라 출신이고 동방을 주관하는 신이라는 내용 때문에 한국의 일부 사람들은 복희가 고대 한국 출신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러나 ‘산해경(山海經)’과 같은 오래된 문헌에서는 복희보다 오히려 신농과의 관련성을 시사하는 대목이 많다.

◈ 서방-소호

名臣후손 다수 배출…동이계 '새 토템' 반영

서방의 신 소호(少昊)의 탄생신화는 아주 문학적이다. 그 이야기는 4세기 경 왕가(王嘉)라는 도인이 지은 소설집 ‘습유기(拾遺記)’에 실려 있다.

소호의 어머니는 황아(皇娥)라고 불렸다. 그녀는 천상의 선녀로서 밤에는 길쌈을 하고 낮에는 배를 타고 놀았다. 그 때 백제(白帝)의 아들이라고 하는 잘생긴 젊은이가 강에 와서 함께 어울렸다. 두 사람은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며 즐거움에 빠져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잊었다.

그들은 배 위에 나란히 앉아 거문고를 타고 놀았는데 황아가 거문고에 맞춰 노래를 부르면 청년이 답가를 하곤 했다. 그 후 황아는 소호를 낳게 되었다.

소호는 처음에는 동방의 신이었다. ‘산해경(山海經)’에 의하면 그는 황제의 손자라고도 하는데 동해의 바깥 먼 곳에 그의 나라가 있었다고 한다. 그의 왕국은 온갖 새들이 다스렸다.

집비둘기 수리 뻐꾸기 매 산비둘기 등이 각기 나라 일을 맡아 다스렸다. 가령 수리는 용맹하여 군사 관계 일을 담당하고 산비둘기는 잘 울어서 조정의 언론을 담당하는 식이었다.

고대 중국의 동쪽 해안 지역에 거주하던 동이계(東夷系) 종족은 새를 토템으로 숭배하였는데 학자들은 소호의 새의 왕국 신화가 바로 이러한 동이계 종족의 새 토템 신앙을 반영하는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동방의 신이었던 소호는 언젠가부터 동방을 떠나 아들인 가을의 신 욕수와 더불어 서방을 다스리게 된다.

그는 서쪽으로 지는 해의 운행 상태를 주로 살폈다. ‘산해경’에 의하면 서방의 장류산(長留山)이라는 곳에 소호의 궁궐이 있었다고 한다.

소호의 후손들 중에는 유명한 인물들이 많다. 아들 반(般)은 처음으로 활과 화살을 만들었으며 요(堯) 임금의 명신이었던 고요(皐陶), 우(禹) 임금의 치수(治水) 사업을 돕고 ‘산해경’을 지었다는 백익(伯益) 등도 소호의 후예이다.

궁기(窮奇)라는 아들은 호랑이처럼 생겼는데 착한 사람을 벌 주고 나쁜 사람을 상 주는 이상한 행동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이밖에 북방에 사는 외눈박이 일목국(一目國) 사람도 소호의 후예였다.

◈ 북방-전욱

다른 神과 달리 과격…신-인간 영역 구분

북방의 신 전욱은 중앙의 신 황제(黃帝)의 증손자라고 한다. 그의 아버지 한류(韓流)는 모습이 괴상하였다. 길쭉한 머리에 작은 귀, 사람의 얼굴에 돼지 주둥이, 비늘 돋힌 몸에 통뼈로 된 다리, 돼지의 발을 하고 있었다 하니 가히 엽기적인 생김새라 할 만하다.

전욱은 어려서 숙부인 소호의 양육을 받았다. 그는 거문고를 잘 탔다 한다. 그는 성장해서 북방의 신이 되었는데 다른 신들과는 달리 과격한 정책을 폈다.

우선 신하인 중(重)과 려(黎)를 시켜 하늘과 땅의 통로를 끊어 버렸다. 사람들이 하늘을 자유로이 왕래하던 통로를 단절시킨 것은 신과 인간간의 영역을 확실히 구분지으려는 의도에서였다.

이 일 이후 전욱은 중으로 하여금 하늘의 일 즉 신들의 일만을, 려로 하여금 땅의 일 즉 백성들의 일만을 맡아보게 하였다.

또한 수신 공공(共工)과의 전쟁도 있다. 공공은 남방의 신 신농(神農)의 신하로서 황제에게 패한 주군의 원한을 갚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 이 싸움에서 비록 전욱은 황제편을 들어 승리했으나 전쟁의 여파로 지상은 크게 파괴되었다.

모든 일에 권위적이었던 전욱은 인간의 예법에도 간여하였다. 그는 심하게 남녀를 차별하였는데 길을 가다가 남자를 보고 피하지 않는 여자는 요기(妖氣)가 있다고 간주하여 붙잡아다 네거리에서 푸닥거리를 치르게 했다.

전욱의 자손 역시 매우 많고 다양한 개성들을 지니고 있다. 아들 중에서 노동(老童)과 태자장금(太子長琴)은 모두 아버지를 닮아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다. 노동은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녔고 태자장금은 좋은 노래를 작곡했다 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과격하고 독한 성품을 이어받은 아들도 있어서 학질 귀신이 있는가 하면 도올이라는 흉악하기 그지 없는 괴물도 있었다.

전욱에게는 또 궁선(窮蟬)이라는 아들도 있었는데 그는 부뚜막 신이 되어 한 집안의 숭배를 받으며 살았다. 전욱의 후손들은 중국 변경 각지에 나라를 세웠다. 남방의 계우국, 서방의 숙사국(淑士國) 등이 그것이다.

오방의 신들을 하나 하나 살펴보면 중국의 신들은 이름이나 역할, 기능 등이 고정되지 않고 중복되거나 자리바꿈을 한다.

홍수 남매혼 신화에서의 소년 복희는 신성한 동방의 신이 되는가 하면 서방의 신 소호는 동방의 신이기도 했고 북방의 신 전욱이 중앙의 신 황제의 노릇을 한다. 이러한 혼란에는 이유가 있다.

첫째로 고대의 중국 대륙에는 수많은 종족들이 함께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일관된 신화계통이 존재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지배적인 종족이 바뀌면 그에 따라 신들의 지위도 바뀌게 마련이었다.

둘째로 고대의 중국은 거주 지역이 지금보다 훨씬 좁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영역이 넓어지자 방위 개념도 바뀌었다. 이에 따라 신들의 관할에도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리스 신화가 로마 제국에 수용되면서 신들의 성격이나 직능에 다소 변화가 생겼다. 그러나 중국 신화가 훨씬 변화의 폭이 큰 것은 그리스나 로마보다 더 많은 종족이 광대한 영역에서 다양한 계통의 신화를 갖고 각축했기 때문일 것이다.

●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주역’을 보충, 해석하는 십익(十翼) 중의 하나. 공자가 지었다고 전해지는 ‘주역’에 대한 해설이다. 상ㆍ하 두 편으로 되어 있으며 ‘주역’의 음양 변화의 사상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계사전의 철학적 내용, 문체 등은 공자 한 사람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보기 힘들다. 그의 제자들이 이끄는 후대의 유가학파들에 의해 쓰여진 것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 습유기(拾遺記)

중국의 신화ㆍ전설을 각색한 고대 소설집. 작자는 후진(後晉) 시대의 왕가(王嘉).

삼황오제(三皇五帝) 때부터 서진(西晉) 말기 석호(石虎)까지의 이야기를 수록하고 있는데 원본은 없어졌고 현재 ‘한위총서(漢魏叢書)’등에 수록되어 있는 것은 양(粱)나라 소기(蕭綺)가 총 10권으로 재편집한 것이다.

마지막 제 10권은 곤륜산(崑崙山) 봉래산(蓬萊山)을 비롯한 아홉 개의 선산(仙山)을 묘사하고 있다. 문장이 아름답고 내용은 상상의 극치를 다하고 있다.

글=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그림=서용선 서울대 서양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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