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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전!6.13을 향해 뛴다 / 대전·광주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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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전!6.13을 향해 뛴다 / 대전·광주 르포

입력
2002.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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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가 3일 앞으로 다가 온 10일에도 대전시장 선거 판세는 여전히 안개속이다. 한나라당 염홍철(廉弘喆) 후보와 자민련 홍선기(洪善基) 후보가 서로 앞섰다고 주장하는 데다 시민들조차 “잘 모르겠다”며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누가 시장이 될 것 같으냐는 물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내가 알 게 뭐냐”는 식이다. 투표율이 저조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박빙 승부에서 이기기 위한 금품 살포 등 막판 혼탁 우려도 크다.

이 지역의 한 중견언론인은 “대전은 지금 정치적으로 무주공산(無主空山)”이라며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사력을 다하고 있지만 민심은 선거와 멀어지고 있는 묘한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어느 정당도 유권자의 호감을 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주된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자민련 김종필(金鍾泌) 총재는 이 곳에서 1995년 창당 이래 5년 넘게 전폭적 지지를 받았지만 16대 총선을 고비로 지지도가 급속히 떨어졌다.

민주당은 인근 논산 출신인 이인제(李仁濟) 의원의 당내 경선 탈락으로 선거 기반이 무너진 데다 권력형 비리 의혹까지 겹친 상황이다. 그 틈에 한나라당이 어부지리로 지지를 넓히고는 있으나 JP의 벼랑 끝 저지선이 완강하다.

그러나 JP의 영향력 쇠퇴는 뚜렷하다. 유성 온천관광단지에서 만난 30대의 택시 기사는 “JP 자신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우리한테는 ‘대통령이 돼 내각제를 실현하겠다’고 거짓말만 하고 다닌다”며 “충청도 사람을 핫바지 취급하는 건 바로 JP 자신”이라고 말했다.

서구의 부동산 중개업자인 김모(44)씨는 “대통령 세 아들이 비리를 저질렀으면 따끔하게 따지고 비판해야지 선거가 임박하니까 또 민주당과 손을 잡았다”며 “지조 없이 오락가락하는 JP는 이제 인기가 없다”고 말했다.

3선에 도전한 홍 후보 스스로도 자민련이나 JP를 연상시킬 요소를 철저히 배제한 선거 운동을 해 왔다. 선거 홍보물에는 JP와 함께 찍은 사진을 실었지만 정작 가정에 배달된 홍보물에는 JP가 빠진 사진을 실었다.

물론 반론도 있다. 자민련 이양희(李良熙) 의원은 “JP에 실망하는 여론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밑바닥 정서는 여전히 자민련에 기울어 있다”며 “한나라당 의 공세가 심해지면서 우리를 비판하던 사람들조차 우리쪽으로 돌아서는 등 자민련에 대한 애정이 조금씩 되살아 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과 이회창(李會昌) 대통령 후보에 대한 관심이 커지긴 했지만 아직 확실한 대안으로 자리잡지는 못했다. 건설업을 한다는 이모씨(57)는 “한나라당이 경상도 당이지 충청도 당이냐”며 “이 후보는 대통령 되려는 욕심에 예산이 고향이라고 하지만 여기서는 누구도 충청도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다만 한나라당이 충청 공략의 주무기로 삼아 온 ‘충청 대통령론’이 파고 들 여지는 커진 것으로 보인다. 자민련과 JP의 비중을 의도적으로 낮추려는 홍 후보와 달리 염 후보는 홍보물에 “한나라당은 자민련을 대신해 충청인의 권익을 대변할 유일 정당”이란 문구와 함께 이 후보의 사진을 크게 실었다.

이동국기자

east@hk.co.kr

▼공천포기 민주 지지표 이탈 후유증

민주당은 한나라당, 자민련과 마찬가지로 대전에 2명의 지역구 의원이 있는데도 시장 후보를 내지 못했다.

당초 6명의 지구당 위원장들이 정하용(鄭夏容) 전부시장을 추대했으나 당 지도부가 공천을 포기했다. 당 지도부는 수도권에서 자민련의 지지를 얻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이해를 구했지만 현지의 후유증은 상당히 심각하다.

박병석(朴炳錫) 의원은 민ㆍ자 공조에 항의해 시지부장을 사퇴했다. 유성구가 지역구인 송석찬(宋錫贊) 의원도 “시장선거에서는 당의 결정에 따라 자민련 후보를 밀겠지만 구청장 선거만큼은 안된다”며 오히려 한나라당 구청장 후보를 지원할 뜻을 밝히는 등 당 지도부의 방침에 반발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이인제(李仁濟) 고문의 대선 경선 탈락과 권력형 비리 의혹에 덧붙여 시장 후보까지 내지 못해 조직이 급격히 무너졌다”며 “동, 중, 대덕구 3곳에 구청장 후보를 냈지만 솔직히 선거운동이라고 할 수도 없다”고 허탈해 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호남 출신(약 24%)과 젊은층을 중심으로 20%대를 유지해 온 고정 지지표의 이탈이다.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30대의 한 회사원은 “내가 사는 서구에 민주당 후보라고는 시의원 밖에 없어 영 투표할 기분이 나지 않는다”며 “민주당이 청산 대상인 JP와 손잡아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이동국기자

■광주

6ㆍ13 지방선거가 불과 며칠 앞으로 다가왔지만, 광주 시민들 사이에서 1997년 12월 대선이나 1998년 6ㆍ4 지방선거 당시의 뜨거운 열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광주 공항에서 만난 회사원 윤모(42ㆍ남구 봉선동)씨는 “누가 광주시장으로 출마했는지도 모른다”며 “선거가 코 앞이라지만 전체적으로 선거에 관심이 없다”고 시큰둥해 했다.

자동차 부품상을 하는 양민호(35)씨도 “선거 벽보를 제대로 읽어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면서 “선거유세를 하러 와도 시끄럽고 짜증스럽다는 생각만 든다”고 말했다. “이번 투표율은 50%도 채 안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 곳 유권자들의 무관심은 선거 때마다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던 민주당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과 실망감 때문인 듯 했다. 대다수 시민들은 대통령 아들 비리 등 잇따르는 각종 권력형 비리를 보면서 깊은 허탈감과 좌절을 맛보고 있다. 지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거세게 불어닥친 ‘노풍’의 위세도 한풀 꺾인 모습이다.

충장로에서 만난 이모(54ㆍ노동)씨는 “내가 이런 꼴 볼려고 김대중씨 찍어준 줄 알어?”라며 “김영삼이나 김대중이나 다 똑 같당께”라고 혀를 찼다.

광주 양동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손모(34)씨도 “카리스마적 존재였던 김대중씨가 정권을 잡았지만 광주가 좋아진 것은 없고 오히려 아들 비리 문제까지 겹쳐 민심이 안 좋다”며 “특히 노풍의 진원지인 광주에서조차 노 후보 인기가 시들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교사 박모(31ㆍ여)씨는 “동료들 사이에서 ‘민주당 찍어 봤자 그게 그거다’는 인식이 팽배하다”며 ‘반(反) 민주당’ ‘탈(脫)DJ’ 정서를 전했다.

이 같은 ‘민심 이반’현상은 최근 민주당 광주시장 후보 경선 및 공천과정에서의 잡음과 맞물려 무소속 후보들의 선전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개인택시를 하는 유모(46)씨는 “바닥 경기와 전남도청 이전 문제로 불만이 쌓여온 터에 ‘홍 3’ 게이트와 광주시장 공천 잡음까지 터져 민심이 사납다”면서 “예전에는 민주당이면 다 찍었는데 이제 그런 프리미엄은 사라졌다”고 목청을 높였다.

회사원 주정훈(34)씨는 “정동년(鄭東年)씨 등 무소속 후보의 약진은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민주당에 대해 텃밭 민심이 내리는 심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50대 이상의 나이 든 시민들 사이에선 “그래도 민주당 아니냐”는 바닥 정서가 깔려 있었다.

50대 주부 김모(북구 용봉동)씨는 “대통령 되니까 썩은 정치만 하고 실망감이 크지만 그래도 한 번은 더 찍어줘야지 어쩌겠냐”고 말했다. 인근에서 제과점을 하는 신모(62)씨도 “민주당이 정신을 차리도록 혼내주고 싶은데 막상 무소속 후보 중에는 시장 감이 없다”고 말했다.

전남대 지병문(池秉文) 정외과 교수는 “민주당 후보는 싫지만 대안이 마땅찮아 기권하려는 유권자가 많다”며 “투표율이 낮으면 조직표가 많은 민주당이 유리하고, 투표율이 높으면 ‘민주당 심판’을 내세운 무소속 후보가 우세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정철기자

parkjc@hk.co.kr

안경호기자

khan@hk.co.kr

▼盧방문 저지등 시민단체가 변수로

광주시장 선거의 최대 변수는 이 지역 시민단체를 망라한 ‘광주ㆍ전남 시민사회연대회의’가 전개해 온 ‘광주 정신 지키기 범시민 운동’이다. 이들은 후보의 정책ㆍ공약 평가 등을 통해 ‘후보 자질 검증 운동’을 벌이는가 하면, ‘부정부패 후보 찍지 않기’캠페인도 펼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지난달 광주 서구청장 출신의 이정일(李廷一) 전후보가 경선 과정에서 광주지역 의원들에게 금품을 제공한 의혹으로 교체된 후 민주당이 박광태(朴光泰ㆍ광주 북구 갑) 전의원을 시장 후보로 내세우면서 본격화했다.

이들은 최근 ‘반(反) 민주당’여론에 당혹감을 느낀 민주당측이 위기 돌파용으로 노무현(盧武鉉) 후보의 광주 방문을 추진하자, “노 후보의 방문은 광주 전남 유권자의 자주적 선택을 방해하는 것”이라며 반대 성명을 냈다.

이후 광주 노사모에 이어 종교계 대표들까지 노 후보의 광주 방문을 반대하고 나서는 바람에 노 후보는 9일로 예정된 광주 지원 유세를 취소했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은 광주시장 후보 경선 과정에서 드러난 금품수수 등 불법ㆍ타락 행위에 대해 뚜렷한 해명은 물론 사과 한 마디 없이 슬그머니 후보를 바꿨다”며 “시민의 뜻을 저버린 채 일방적으로 시장 후보를 선정한 민주당의 오만한 행태를 이번엔 반드시 심판하겠다”고 다짐했다.

박정철기자

parkjc@hk.co.kr

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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