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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 out / 각본있는 드라마가 싫어

입력
2002.06.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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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방송 보면 안되나?”축구 팬에게 이런 말을 했더니 되돌아오는 눈빛이 심상치 않다.

하지만 월드컵이나 올림픽 기간 중 유난히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들의 생각은 이렇다.

“왜 똑같은 화면을 3개 방송사에서 경쟁적으로 내보내나.” “이런 게 바로 전파 낭비 아닌가.” “차라리 한 두개에서만 스포츠 중계를 하고 나머지 채널에서는 드라마를 하면 어떨까.”

8, 9일 오랜만에 TV로 드라마를 보았다. 그러나 그토록 갈망해온 TV 드라마는 이런 갈증을 채워 주기에는 부족함이 너무 많았다.

‘유리 구두’(SBS)를 보자. 가난이 지겨웠던 승희(김민선)가 선우(태희) 대신 재벌가의 둘째 손녀 ‘윤희’로 가장한 것까지는 이해하자.

그러나 이후 승희의 ‘패악질’은 해도 해도 너무 심하다. 사실을 알아차린 김회장이 교통사고를 당해 마지막 도움을 요청하는 대목에서도 그녀는 외면하고, 운전 기사가 살아나 자신에 대해 증명할까봐 그녀는 심지어 가위를 들고 응급실로 들어가는 대목에서 그녀는 사람이 아니다.

드라마 속 모든 악녀의 행동이란 언제나 인간에 대한 회의를 들게 하기 마련이다.

연초 방영됐던 ‘네 자매 이야기’에서도 심장마비로 죽어가는 친구로부터 약을 빼앗는 극단적인 장치가 동원됐었다.

그러나 이제 20대 초반의 여성이 저지르기에 너무 심한 죄를 각본은 강요하고 있다.

드라마 속 승희는 자신의 큰 거짓말을 지키기 위해, 또 선우에 대한 열등감으로 부르르(실제로 김민선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부르르’ 떠는 장면을 자주 연출하는데 영 어색하다)떨며 틈나는 대로 각종 간계와 모략을 꾸며댄다.

드라마는 선인이 어떻게 제자리를 찾게 되는가가 아니라 극단적 우연과 사고를 거듭 제시하면서 인간이 얼마나 더 나빠질 수 있느냐에 악착같이 매달리고 있다.

차라리 승희가 어떻게 아슬아슬하게 세상과 자신을 속여가는 지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면 어떨까. 선정적인 장면이 없어도, 피가 많이 나지 않아도, 이 드라마는 인간이라는 명제에 회의를 갖게 만든다는 점에서 저질이다.

준비된 드라마가 주는 이런 실망감 때문에 사람들은 “각본 없는 드라마” 스포츠에 열광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거의 처음으로 들기 시작했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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