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6월11일 미국의 영화배우 존 웨인이 72세로 작고했다. 아이오와 출신의 웨인은 미식축구 선수로 대학 시절을 보낸 뒤 22세 때인 1929년에 할리우드에 발을 들여놓았다.초기에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백인 여행객들과 아파치 인디언 사이의 전투를 그린 존 포드 감독의 1939년 영화 ‘역마차’에서 주인공 링고 키드 역을 맡아 스타덤에 올랐다.
원래 이 역은 웨인의 평생의 라이벌이 될 게리 쿠퍼에게 돌아갈 예정이었으나, 포드 감독이 뜻을 바꿔 당시로서는 경량급이었던 웨인에게 맡겼다.
그 뒤 웨인은 ‘코레히도르 전기(戰記)’ ‘아파치 요새’ ‘황색 리본’ ‘리오그란데 요새’ ‘조용한 사나이’ 등 포드 감독의 영화에서 계속 주연을 맡았다.
정치적으로 웨인은 미국의 매파 우익을 대표했다. 그는 할리우드의 동료들이 매카시즘에 떨고 있던 1950년대 초에 노골적으로 매카시를 찬양했고, 반전(反戰) 자유주의의 열풍이 거세던 1960년대에 베트남전을 두둔함으로써 애국주의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다.
영화 속에서 웨인이 즐겨 맡았던 역은 사회 질서와 정의를 세우기 위해 말보다 주먹을 앞세우는 ‘고독한 서부의 사나이’였는데, 이런 미국식 영웅주의는 미국 보수파가 주장하는 ‘힘의 외교’와 상통하는 바가 있었다. 그 점에서 웨인은 ‘람보’ 시리즈의 실베스터 스탤런의 선배였다.
전성기였던 1954년 웨인은 칭기즈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정복자’에 출연했다. 촬영 현장인 미국 애리조나의 피닉스 외곽 사막지대는 1952년까지 미국 정부가 핵실험을 했던 방사능 오염 지역이었다.
수백명의 엑스트라를 포함해 웨인과 함께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과 스태프의 90% 이상이 5년 안쪽에 암으로 사망했다. 웨인은 그로부터 20여년을 더 살았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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