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의 함성이 나라를 흔든다. 거리마다 ‘대~한민국’을 외치는 사람들의 환호가 가득하다.힘든 세상살이를 모두 잊고 축구 선수들과 한 몸이 되어 같이 뛰며 승리를 외치는 요즈음이야말로 감동의 순간이다. 그러나 어찌 우리가 사는 현실을 버릴 수가 있겠는가?
나라의 앞날을 결정하는 중요한 정치 행사인 6·13 지방선거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선거에 대한 무관심이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주민들은 자기 지역에 누가 출마했는지 모른다. 전과자들이 무더기로 출마해도 걱정조차 안 한다.
심지어 선거 공보물이 와도 뜯지도 않고 쓰레기통에 버린다. 선거에 대한 무관심은 자신과 나라에 피해를 자초하는 자기 부정 행위이다.
투표율이 떨어지면 조직과 돈 선거가 판을 친다. 그러면 저질이나 함량 미달의 후보가 당선되고 정치는 비리와 부패에 빠진다.
이 가운데 문제가 큰 것이 선심정책이다. 일반 국민의 관심이 저조한 상태에서 표에 영향력이 큰 이익단체나 업계의 요구에 응하는 선심 경제정책이 남발되고 있다.
정부는 운수업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2006년까지 유류세 인상에 따른 업계 부담액의 50%을 국고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금액으로 따져 2조7,000억원이나 된다. 신용협동조합의 출자금을 예금보호대상에서 제외키로 한 방침도 철회했다. 선거를 앞두고 숫자가 530만명에 이르는 조합원들의 반발이 크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정부는 또 자동차업계의 끈질긴 요구 끝에 특별소비세 인하를 2개월 연장하기로 했다. 신용카드 남발을 막기 위해 방문모집을 금지키로 했던 것도 기업체 방문을 허용키로 했다. 업계의 반발 무마와 경기부양을 위한 1석 2조의 포석이다.
경제정책이 정치논리에 휘둘릴 경우 경제는 정치적 악순환에 빠진다. 선거 때면 대규모로 풀리는 자금과 선심정책으로 경제가 거품으로 들뜬다.
선거 이후 거품이 빠지면 고통과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된다. 이 과정에서 국민은 구조조정이라는 뼈아픈 희생을 함께 겪는다.
경제가 선거를 치를 때마다 정치적 함정에 빠질 경우 산업 경쟁력은 낙후하고 소득격차는 심화되는 후진경제가 된다. 여기서 정치 낙후에 따른 비리와 부패가 만연할 경우 경제가 먹이의 대상이 되는데, 그러면 경제는 ‘병든 공룡’으로 쓰러진다.
결국 국민의 참여의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선거는 없고 선심만 있을 경우 정치와 경제는 퇴행과 붕괴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월드컵과 지방선거가 겹치자 사람들은 선거에 대해서 이야기조차 하기 싫어한다. 거짓말을 일삼으며 흙탕물 싸움만 벌이고 있는 정치가 지겨워 사람들은 축구경기에 더 몰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선거가 잘못되면, 그리고 정치가 병이 들면 나라는 어떻게 되고 우리는 무슨 일을 할건가? 정치는 아무리 싫어도 나라 운명과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선거도 하고 축구도 보면 되는 것 아닌가.
우리 국민은 현실을 부정하기 위해 축구에 열광할 만큼 무모하지는 않다. 축구에 대해 여는 마음을 선거에 함께 열어 정치 축제도 같이 치루는 노력이 필요하다.
축구를 보기 위해 축구장에 가듯이 선거전을 보기 위해 합동연설 현장을 가야 한다. 축구 선수들의 전력을 분석하듯이 선거공보를 보고 후보들의 공약과 역량을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우승팀을 뽑듯이 투표장에서 올바른 정치인을 뽑아야 한다. 국민은 월드컵의 성공적 개최와 우리 팀의 16강 진출을 열망하고 있다.
6·13 지방선거의 성공과 올바른 지도자의 선출에 대해서도 똑 같은 열망이 필요하다.
/이필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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