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가 축구만큼이나 잘 나간다. 칸 영화제에서 ‘취화선’의 임권택 감독이 감독상을 받은 것이 엊그제인데, 다시 ‘마리 이야기’가 세계 최대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프랑스 안시 페스티벌에서 우리 작품이 수상하기는 처음이다.
올 초 국내에서 개봉되었던 이성강 감독의 ‘마리 이야기’는 미지의 신비로운 소녀 마리와 수줍은 바닷가 소년의 만남과 추억을 파스텔톤의 서정으로 그렸다.
그러나 아름다운 서정에도 불구하고 이야기가 다소 단조로워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 국내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도 최근 베를린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받은 작품이다.
이 영화도 10세 소녀 치히로의 신비로운 성장기를 서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당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뜻밖의 수상소감을 밝혀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것은 지성인의 자기고백이자 반성이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가운데는 폭력과 섹스가 난무하는 게 더 많아 큰 문제다. 해외의 평가는 아직도 ‘일본만화=저질’이라는 것이 주류다.”
■ 한국 어린이들이 자라면서 본 것도 대부분 그런 일본 만화영화였다. 이 점에서 폭력과 섹스적인 요소가 걸러져 무(無)공해적인 영화 ‘마리 이야기’가 수상한 사실이 기쁘다.
근래 ‘쉬리’와 ‘공동경비구역 JSA’ ‘친구’ 등이 다양한 주제와 소재로 우리 영화의 진부한 이미지를 바꿔놓는 데 성공했지만, 그것은 어린이가 배제된 어른들만의 잔치였다.
이번 수상은 인간의 내면을 성찰하는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을 꾸준히 제작해 온 이 감독의 열정을 기념하는 자리가 될 것이다.
■ 우리 애니메이션 가운데 성공한 작품으로 김수정씨의 1983년 작품 ‘아기공룡 둘리’를 꼽을 수 있다. 그 성공 요인은 앙증맞고도 유머러스한 캐릭터를 창조한 것인데, 유감스럽게도 이렇다 할 후속 작품이 없었다.
‘마리 이야기’의 수상이 독특한 캐릭터를 창조해내지 못한 채 하청제작에 머물러 있는 우리 애니메이션 업계를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한국이 독창적 캐릭터와 영상으로 애니메이션의 새 지평을 열 때가 되었다는 신호가 프랑스로부터 들려오고 있다.
박래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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