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나의 정년 이후] 음악교사서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이문옥씨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나의 정년 이후] 음악교사서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이문옥씨

입력
2002.06.11 00:00
0 0

37년간 중학교 음악교사로 일했던 이문옥(65)씨. 정년 후 춤을 익혀온 그는 요즘 다른 실버들에게도 춤의 효과를 전파하느라 바쁘다.“춤이야말로 노화예방에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예찬하는 그는 불타는 사명감으로 노인들의 춤확산에 애쓰고 있다.

그가 이처럼 뜨겁게 춤바람(?)이 난 것은 3년 전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남편의 재활훈련을 보조하면서 부터다.

서울 신당동 시니어스타워 홀. 매주 수요일 오후면 30∼40명의 시니어들이 모여 마음대로 따라 주지 않는 몸을 움직이며 춤을 익히느라 구슬 땀을 흘리고 있다.

바로 내가 지도하는 레크리에이션 수업 시간. 온몸이 땀으로 푹 젖은 시니어들이 남녀로 쌍을 이루어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아간다. 남자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탓에 여자끼리 파트너가 되기도 한다. 바로 내가 희열과 보람을 맛보는 순간이다.

국내 유일의 시니어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불리고 있는 나는 일찍이 음악과 무용을 생활 속에 접해 왔다. 중앙대음대를 졸업하고 초ㆍ중학교 음악교사로 일하면서 학교 매스게임 등 행사를 도맡아왔다. 노래를 좋아하는 남편은 테너로, 나는 소프라노로 40년간 함께 성가대 봉사를 해왔다.

55세에 명예퇴직을 하자마자 이화여대 평생교육원의 레크리에이션 지도자 과정에 등록한 것도 평생 음악과 춤을 즐겨온 덕분이었을지 모른다. 평생교육원에서 초ㆍ중급 과정을 마스터하고 1급 레크리에이션 강사 자격증을 따냈다.

당시 지도교사는 나에게 내친 김에 노인지도자 전문과정까지 마치라고 권했다. 앞으로 우리나라도 고령화사회에 들어서면 노인지도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할 것이고, 같은 연배의 지도자가 지도를 하면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

당시 지도교사의 권유에 받아들여 노인지도자과정까지 마친 것은 정말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나는 노인프로그램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노인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시니어인 까닭에 나이 든 사람의 신체 변화와 어려움을 잘 안다. 누구보다도 뛰어난 노인프로그램의 적임자인 것이다.

나는 노인에게 맞는 춤사위 연구에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동작을 너무 강하게 하면 다칠 수도 있고, 너무 약하게 하면 효과가 없기 때문에 부드럽고 유연하면서도 근육을 풀 수 있는 동작을 개발하느라 늘 고심하고 있다.

또 노인들에게 필요한 동작을 새로 만들어 내는 일뿐 아니라 젊은 사람 위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을 노인에게 맞게 변형시키는 작업도 하고 있다.

신체가 유연하지 못해 자주 넘어지고, 한 번 넘어지면 팔다리가 골절돼 꼼짝없이 침대 신세를 지는 어르신을 자주 보았기 때문이다.

춤과 노래의 효과는 인생을 풍부하고 즐겁게 해 준다는 점일 것이다. 나는 춤 강습시간마다 어르신들에게 ‘몸 속 엔도르핀 공장을 돌린다는 생각으로 춤을 추면 그만큼 젊게 살 수 있다’는 강조한다.

시니어들 사이에서 포크댄스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것은 음악에 맞춰 스텝을 밟는 순간 만큼은 몸과 마음이 젊어지기 때문이리라.

나는 수업이 시작되기 전 시니어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하곤 한다. “나이를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춤입니다. 우리 노인들도 춤과 노래로 새로운 인생을 찾고 노후를 건강하고 젊게 삽시다.” 이 때문인지 수강생들은 몸이 피곤하고 불편해도 결코 포크댄스 시간만은 거르는 법이 없다.

내가 이처럼 제2의 인생을 당당하게 펼쳐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의 배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이 나이에 할머니소리 듣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활동적으로 해 나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정신적ㆍ 물질적으로 지원해 준 남편에게 나는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나 역시 남편에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한의사였던 남편은 1998년 1월 교통사고로 전신마비가 됐다. 당시 남편은 경추(목뼈) 3번에서 7번까지 다쳐 대수술을 받았으나 후유증이 심각했다.

가슴과 머리만 살아있는 1급 전신마비 장애자로 국립재활원, 세브란스 재활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았지만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 중증 장애자가 된 남편에 대해 사실 주위에서는 거의 포기 상태였다.

곁에서 지켜보는 내 애 타는 심정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하지만 나는 희망을 접지 않았다.

매일 남편에게 스트레칭 훈련을 시켰다. 척추환자는 하루만 쉬어도 근육이 굳어 버린다기에 매일 온 몸 마사지를 해주었다.

피나는 노력 덕분이었을까. 삶의 의지가 강했던 남편의 몸은 조금씩 유연해졌고 기적적으로 신경이 0.1㎜씩 자라나 1년 만에 어깨를 돌리고, 2년 후에는 허리까지 돌리게 됐다.

과학적인 운동처방에 따라 열심히 운동한 결과, 이제는 휠체어없이도 활동하게 됐으며, 최근에는 둘이 여행까지 다녀왔다. 지금은 혼자 힘으로 걷고, 글씨도 쓰고, 면도도 할 수 있다. 모두들 기적이라고 말한다.

남편의 재활훈련을 도우면서 나는 신체단련의 중요성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 레크리에이션 지도, 그리고 남편과의 삶은 나의 노년을 의미있게 구성하는 두가지 축이다.

나는 레크리에이션 강의 이외에는 거의 모든 시간을 남편과 함께 지내며, 나날이 회복돼 가는 남편의 모습에 감사하고 기뻐하고 있다. 물론 남편이나 나나 젊었을 때 쌩쌩했던 모습은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잘 나가던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보다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은 현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아닐까.

입력시간 2002/06/11 11:42

[목록]

document.write(ad_script1);

▲Top

뉴스포탈

|

한국일보

|

일간스포츠

|

서울경제

|

Korea Times

|

소년한국일보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