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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 (11)꾀많은 산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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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 (11)꾀많은 산딸나무

입력
2002.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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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딸나무가 한창입니다. 이 나무를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한라산 자락이나, 제가 일하고 있는 수목원이나 공원이나 그 눈부신 꽃송이들의 깨끗함과 풍성함을 보노라면 마음까지 밝아지곤 합니다.두 해 전 이즈음, 미국의 식물원들을 돌아볼 일이 있었는데 그때 가장 눈길을 끄는 나무들의 하나도 바로 이 산딸나무 종류였습니다.

같은 나무라도 특별히 아름답게 가꾸고 즐기는 서양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것이 모두 식물에 대한 관심이 나타난 것이기에, 우리는 왜 좋은 우리 식물을 많이 두고도 제대로 알아주지도 이용하지도 못하나 싶어 부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못난 주인을 만난 이 땅의 산딸나무였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온갖 사랑을 받던 이 나무들에게 병이 돌아 죽어갈 때 가장 강인하게 살아, 우리의 씨앗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니 더욱 미안할 뿐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작은 산딸나무 파동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못 박히신 십자가를 만든 나무라는 소문 때문에 이 나무를 심겠다는 갑작스런 수요가 몰렸기 때문이었지요.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진짜 십자가로 쓰인 나무라면 예수님이 사시던 더운 나라의 나무가 추운 겨울을 가진 이 땅에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헛소문에 휩싸였다가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산딸나무는 말없이 꽃을 피워, 부화뇌동 하였다가 쉽게 잊는 단순 무지한 우리 인간들에게 진리란 그 어느 곳에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네 장의 꽃잎이 달려 마치 작고 흰 십자가를 본 듯한 모양을 하고 있으니까요.

지금 제가 꽃 모양을 쉽게 설명하느라 네 장의 꽃잎이라고 말했지만 실은 식물학적으로 꽃잎으로 보이는 부분의 정확한 이름은 포(苞)입니다.

산딸나무는 아주 작은 꽃들이 축구 공처럼 둥그렇게 모여 있습니다. 꽃들이 워낙 작고 보잘 것 없어 이렇게 수십 개가 모여 있어도 그 꽃차례(꽃이 배열된 모양)의 지름이 1㎝도 안됩니다. 잎이 무성한 초여름의 숲 속에서 그런 모습으로는 곤충들의 눈에 잘 들어올 리가 없으니 꾀를 내었습니다. 꽃차례에 아래에 달려 있는 네 장의 포를 마치 꽃잎처럼 희게 만들어 숲 속에서 꽃이 피어있음을 잘 보이도록 스스로 변신한 것이지요. 제대로 결실을 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살아가는지 모르겠습니다.

국가에서 큰 행사가 있는데, 기능이 정지된 국회를 두고 식물국회라고 하더군요. 이렇게 치열하게 노력하며 지혜롭게 조화되어 살아가는 산딸나무를 비롯한 식물이 들으면 몹시 서운해 할 일입니다.

/이유미ㆍ국립수목원 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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