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TV에는 월드컵 열기만큼 뜨거운 것이 또 있다.여교사와 남자 고교생 제자의 사랑을 그린 드라마 ‘로망스’를 둘러싼 논쟁이 그것이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은 교권침해를 문제 삼았고 드라마에 환호하는 청소년들은 기성세대의 편협함을 비난하고 나섰다.
학부모와 일선 교사들은 드라마가 어서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TV가 한 사회 가치관의 뿌리를 흔들고 있는 현장을 우리는 지금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몇 해 전에도 남자 교사와 여고생의 사랑을 그린 드라마가 화제를 일으킨 적이 있다. 그 때만 해도 시청자들은 ‘순애보’라고 덮어 주었다.
우리 사회를 억눌러 왔던 유교주의 가치관을 타파해 내는 TV의 마력에 갈채를 보내는 사람도 많았다. 그렇게 힘을 얻은 TV는 이제 우리 사회의 마지막 금기 영역마저 무너뜨리기 시작한 것이다.
로망스가 불러온 사회적 반향은 염려의 수준을 훨씬 넘는다.
드라마 홈페이지 검색수가 하루 수십만 건에 달하고 남자 주인공은 시대의 영웅으로 등장했다. 자신들의 학교에도 주인공 여선생님 같은 분이 단 한 사람만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반응도 쇄도한다.
드라마가 제시하는 선생님 모습에 비교해 보면 자신은 얼마나 초라한가 고민하는 선생님도 많다고 한다.
선생님이기 이전에 사랑의 대상이라고 우겨 버린다면 더 이상 이 시대의 권위는 존재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안타깝다.
물론 기성세대도 이성 선생님에게 애틋했던 마음을 어릴 적 누구나 한번쯤은 가져 봤다. 다만 차이는 그것을 내재되고 절제된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했다는 것이다.
그런 내면의 잠재의식에 불을 당겨 기어이 표현해 버리고 마는 드라마의 무절제가 염려스럽다.
자극적이어야 환영 받고 기형적이어야 관심을 끄는 우리 사회의 가치관도 문제지만 왜 하필이면 TV가 그런 분위기를 주도해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사실상 TV 드라마는 그 동안 좀처럼 공개적인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사회적 이슈들을 지속적으로 여론의 시험대 위에 올려 놓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다만 그 같은 변화가 사회 구성원 전체의 토론과 합의를 거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TV 드라마라는 상업적 수단에 의해 일방적으로 던져지고, 인터넷과 같은 집단적 여론매체에 의해 사회 전체의 의견인 양 증폭되기 때문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할 말은 많지만 적극적이지 못하고, 또한 인터넷에 익숙하지도 못한 다수 시청자들은 침묵만 할 뿐이다.
TV를 통해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는 ‘그들의 대한민국’은 이미 따라 잡을 수 없을 만큼 저만치 앞서 가고 있는 것 같아 초조해 하기도 한다.
드라마 한편이 그야말로 오락으로 끝나 버렸던 시절과는 얘기가 다르다. 그렇게 해서 부쩍 커져 버린 드라마의 힘을 정작 한국 TV는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제는 우리 TV가 좀 더 어른스러워졌으면 한다.
시청자들의 주목을 끌기 위해서 기존 질서에 반하는 가치들만 골라서 다루고, 부분적으로만 존재하고 바람직하지도 않은 현상을 마치 시대상의 반영인 양 미화하고 전파하는 일은 그만 했으면 좋겠다.
설령 그것이 시대의 현실이라고 해도 TV가 앞서 나가야 할 이유는 없다. 현실에 충실하다는 것과 현실에 연연하는 것은 무척 다르다.
결국 방송은 사회의 도덕률을 지키는 선봉장이 되어야 한다. TV는 일탈적인 메시지를 쉽게 허용하지 않는 보수적인 매체로서의 자존심도 때로는 세워야 한다.
합리적인 사리분별 능력을 아직 갖추지 못한 청소년 시청자들에게 드라마의 대사 하나, 장면 하나는 큰 충격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로망스 신드롬’은 그래서 우리에게 많은 걱정거리를 던진다.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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