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과 역경을 두려워하지 않는 헝그리정신이 오늘의 신한을 만든 원동력이죠.”7월7일이면 창립 20주년을 맞는 신한은행의 이인호(李仁鎬ㆍ59) 행장의 감회는 남다르다.
1982년 재일동포 기업인들이 출자한 자본금 250억원과 단 3개 점포로 출범한 소형 후발은행의 창립멤버로 참여해 밤낮을 잊고 산지 어언 스무해. 그 사이 성년으로 훌쩍 큰 신한은 자산 규모(65조원) 면에서 국내 2, 3위를 다투는 초대형 리딩뱅크로 부상했다.
오랜 역사와 전국적 영업망을 앞세운 대형 은행들의 집요한 견제도, 외환위기와 함께 몰려온 혹독한 금융 구조조정의 소용돌이도 신한은행의 잡초 같은 생명력을 억누르지 못한 결과다.
“다른 어떤 은행보다도 먼저 변화의 흐름을 읽고 실천한 것이 첫번째 성공비결이죠.” 그의 말대로 신한은 대기업 위주의 영업이 머잖아 한계에 이를 것으로 판단, 1990년대 초반부터 개인 및 가계, 중소기업을 타깃으로 시장을 확대해 왔다.
세계적 컨설팅업체인 보스턴 컨설팅그룹(BCG)의 자문을 통해 이미 94년부터 개인신용평가시스템(CSS)과 고객관계관리(CRM), 통합리스크관리시스템(IRM) 등 당시로선 생소한 선진 금융체계를 갖추고 체질개선에 총력을 기울였다.
97년엔 단순기능 위주로 분리돼 있던 은행의 조직체계를 업계 최초로 고객 중심의 ‘사업본부제’로 과감히 교체, 은행권에 조직개편 바람을 몰고 왔고, 프라이빗뱅킹(PB)이나 VIP 마케팅 등 요즘 유행하는 고객 차별화 마케팅도 남들보다 먼저 시작했다.
“은행마다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섰던 외환위기를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을 수 있었던 것도, 은행 직원 10명중 4~5명은 직장을 떠나야 했던 험악한 시대에 단 한명의 직원도 인위적으로 감원하지 않고 생존할 수 있었던 것도 남보다 먼저 변화를 받아들인 덕분이죠.”
40대 초반에 서소문지점장과 명동지점장, 본점 영업부장 등을 두루 거치며 ‘영업의 달인’으로 명성을 날린 그는 99년 행장에 취임하면서 더욱 진가를 드러냈다.
환란의 여파로 모든 은행들의 주가가 액면가 밑으로 떨어지고 금융불안이 확산되던 당시 이 행장은 무엇보다 대외 신인도가 중요하다고 판단, 해외로 눈을 돌렸다.
이 행장을 위시한 국제영업팀 직원들은 외국 자본을 유치하겠다는 일념으로 세계 14개 도시와 50개가 넘는 금융기관들을 직접 찾아 다니며 기업설명회(IR)를 열고 또 열었다.
덕분에 신한은 외환위기 이후 한국 민간기업으로는 처음으로 국제 금융시장에서 4억달러의 해외 주식예탁증서(DR)를 발행하는 데 성공했다. 주당 발행가격도 액면가를 훨씬 뛰어넘는 1만2,000원대. 이후 신한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신용을 토대로 99년부터 3년 내리 매년 1조원 이상씩 충당금전이익을 쌓으면서 ‘우량은행’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최고경영자(CEO)로서 이 행장이 평소 가장 강조하는 것은 ‘내부 결속’이다. “아무리 시스템이 훌륭하고 경영전략이 뛰어나도 고객 접점에 있는 직원의 역량이나 서비스정신이 부족하면 은행장사는 그것으로 끝”이라는 게 그의 소신이자 경영철학이다.
또 “직원 만족이 우선돼야 고객만족도 가능하다”고 확신하는 그는 틈만 나면 직원들을 만나 “스스로 ‘시장가치’를 높이라”며 열변을 토한다.
취임 이후 10억원도 채 안되던 직원 연수비용을 70억원 수준으로 대폭 상향조정하고, 모든 부서장에게 의무적으로 대학원코스를 밟게 한 것도 직원 가치를 최우선시하는 그의 소신에서 비롯됐다.
요즘도 틈만 나면 행원들과 함께 호프대회나 등산대회, 단체문화관람에 나서는 그는 “직원 모두가 노후 걱정 없이 정직하고 성실하게 업무에만 전념할 수 있는 직장을 만드는 것이 CEO의 역할”이라며 “늘 말단 행원이라는 생각으로 동료들과 함께 열심히 일하는 행장이 되겠다”고 말했다.
●이인호행장은
▲1943년 대전
▲1962년 대전고 졸업
▲1967년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상업은행 입행
▲1982년 신한은행 개설준비위원
▲1987년 신한은행 명동지점장
▲1997년 신한은행 전무이사
▲1999년 신한은행장
●가족관계 및 취미
▲부인 이화자(58)씨와의 사이에 1남1녀
▲주량 소주1병
▲취미 등산,골프(핸디18)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사진=조영호기자
■ 신한은행은
신한은행은 1982년 7월 재일동포 기업인들이 주축이 돼 국내 금융사상 최초로 순수 민간자본에 의한 시중은행으로 출범했다.
창립 당시 자본금 250억원, 임직원 279명 규모의 소형 후발은행이었지만 지난해 말 현재 자기자본금 3조1,709억원, 총자산 62조175억원, 직원수 4,318명, 점포수 336개를 보유한 ‘빅3’ 은행으로 성장했다.
세계적인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나 S&P 등으로부터 외환위기 이후 시중은행 중 처음으로 ‘투자적격’ 등급을 회복하는 등 해외 신용도도 어느 은행보다 높다.
올 1ㆍ4분기에는 총자산 66조7,746억원, 충당금적립전 이익 3,126억원, 순이익 1,806억원,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12.02% 등을 기록했다.
지난해 9월 정부 주도의 우리금융그룹에 이어 민간은행으로는 처음으로 금융지주회사체제로 전환, 지주회사의 모든 금융상품을 취급하는 핵심 판매채널로 탈바꿈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지주회사 출범이후 ‘원포탈, 원스톱 종합금융’을 표방하며 방카슈랑스(보험 및 은행의 겸영체제), 카드, 투신 등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있고 프랑스 최대의 금융그룹인 BNP파리바와 제휴, 하반기중 소비자금융업(대금업)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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