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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주 칼럼] 월드컵은 국제화해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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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주 칼럼] 월드컵은 국제화해 수단

입력
2002.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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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경기 만큼 민족주의를 자극하고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행사도 없을 것이다.이번에 우리 나라가 월드컵 첫 게임에서 폴란드팀에게 이겼을 때 온 국민이 밤새껏 열광하였다.

지난 금요일 밤 일본의 삿포로에서 있었던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의 경기를 1982년 양국간 전쟁의 연속으로 표현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월요일 저녁에는 대구에서 한국과 미국간의 게임이 있다. 16강 진출 여부가 달린 일대 격전이 될 것이다. 이번 게임의 결과에 따라 한미관계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동시에 월드컵과 같은 운동경기는 민족감정을 완화시키는 역할도 한다. 지난 주, 세네갈과 프랑스간에 열린 2002년 월드컵 개막전에서 진기한 광경을 목격하였다.

예상을 뒤엎고 세네갈이 승리하자 세네갈 코치 브뤼노 메추는 자신의 나라인 프랑스를 격파한 것에 감격하여 세네갈 선수들을 부둥켜 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같은 경기에서 프랑스팀 멤버로 뛴 패트릭 비에이라 선수의 경우는 더욱이나 흥미롭다. 그는 원래 세네갈 출신으로 7세 때 부모와 함께 프랑스로 이주하여 국적을 취득한 사람이다.

그는 경기가 시작되기 전, 프랑스와 세네갈의 국가가 연주될 때 속으로 양국의 국가를 다 따라 불렀을 것이다. 이들에게 어느 쪽의 민족주의과 애국심을 기대할 것인가?

심지어 독일 출신의 카메룬 감독 빈프리트 셰퍼는 "나는 카메룬 감독이다. 독일을 희생시켜서라도 반드시 16강에 진출하고 싶다"고 했다.

월드컵은 또 각국의 세계화를 촉진시킨다. 유럽에 비해 민족주의가 아직도 전성시대를 누리고 있는 아시아에서 이번 월드컵에 진출한 세 나라가 모두 유럽인 코치를 두고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한국 대표팀의 코치인 네델란드인 구스 히딩크는 특히 대 폴란드 전 이후 한국인들의 영웅이 되었다.

히딩크의 경영법, 용인술, 지도력 등이 흠모와 칭송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본 대표팀의 코치는 필립 트루씨어라는 프랑스 인이다.

그는 최근 일본의 팬들과 다소의 갈등이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지만 그래도 지금의 강력한 일본팀을 만들어 낸 장본인으로 인정 받고 있다.

중국 대표팀의 코치는 유고인 보라 멜루티노비치이다. 중국팀이 아직 한국이나 일본팀의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을지 모르나 그는 중국을 월드컵 본선까지 인도해 왔다.

이렇듯 동양 3국은 국가적 광영을 위하여 외국인을 영입하는 글로발리제이션 전략을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은 한일관계와 관련된 것이다. 2002년 월드컵은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개최하는 것이고 그러한 과정에서 한일관계가 더 나빠지지 않았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한일관계는 월드컵을 계기로 하나의 긍정적인 전환점을 맞았다고 볼 수 있다.

개막식 날 대형 태극기와 일장기가 동시에 입장하고, 또 이들에게 열광적인 박수를 보낸 한국인들을 본 세계인들은 (일본인들을 포함하여) 한국민에 대한 감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경기장에는 일본의 기미가요가 울려 퍼졌고, 고이즈미 일본 총리 연설에 대해 한국인 누구도 야유를 보내지 않았다. 이런 것들이 향후 한일간의 희망찬 미래를 창조할 것이다.

14년 전 88 서울올림픽 때도 일본은 부상하는 한국에 대하여 경의와 호의를 갖게 되었고 이번 월드컵을 계기로 일본인들의 한국과 한국민에 대한 인식이 더욱 긍정적인 것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양국민의 서로에 대한 존경심과 호감을 살리고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월드컵은 또한 각국간의 평등을 강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세계 랭킹 1위의 프랑스가 42위의 세네갈에게 패배할 수 있는 것이 월드컵에서 볼 수 있는 이변이다.

인구 400만 미만의 코스타리카팀이 인구 13억을 가진 중국을 제압했다. 월드컵은 또한 미국의 영향력이 가장 약한 국제적 행사 가운데 하나이다.

미국이 주체가 되지 않는, 미국의 역할이 미미한 세계적인 행사가 세계인의 이목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도 국제질서의 또 다른 한 면을 절감하게 한다.

우리 나라가 월드컵을 공동주최하고 또 우리 팀이 선전(善戰)하고 있는 것은 국민 모두가 축하할 일이다. 앞으로의 전적이 계속 좋을 것을 기원하지만 동시에 지금까지의 복합적 결과만으로도 우리는 기쁨과 함께 긍지를 가질 만 하다.

/고려대 정외과 교수·前외무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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