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서울대 신민섭교수 '그림검사' 冊내 "창문많은 집 그리면 애정결핍일 수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서울대 신민섭교수 '그림검사' 冊내 "창문많은 집 그리면 애정결핍일 수도"

입력
2002.06.10 00:00
0 0

다섯 살 영민(가명)이는 ‘나무를 그려봐라’는 요청에 뿌리가 없고 끝이 잘린 앙상한 가지에 다람쥐가 숨어 들어갈 수 있는 구멍까지 그렸다.영민이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칼을 휘두르며 폭력을 가하는 것을 본 후, 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밤에는 자다가 울면서 깨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병원에 오게 되었다.

9살 민경(가명)이가 그린 집에는 창문이 아주 많다. 나뭇가지는 갈고리처럼 뾰족하고, 사람을 그린 그림에는 유독 허리띠와 지퍼 부분이 두드러진다.(그림1)

어려서부터 부모가 싸우는 것을 많이 본 데다 7살 때 낯선 남자 어른에게 성적 학대를 당했다. 그 후 자위행위를 많이 하고 늘 피곤해 하며 불안해 한다.

그림에는 아이들의 마음이 보인다. 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 신민섭 교수가 최근 펴낸 ‘그림을 통한 아동의 진단과 이해’(학지사. 302쪽)에는 170여점의 그림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 상태를 읽는 법을 서술하고 있다.

심리장애의 치료나 진단은 주로 언어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아이들은 인지능력이나 정서발달이 미숙하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을 자유자재로 표현하지 못한다.

그래서 미국에서 1960년대부터 발달한 그림검사는 어린이 심리검사의 기본 방법으로,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집-나무-사람검사’는 모두 친숙한 소재인 데다가 무의식을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기 때문에 그림검사에서 기본으로 쓰인다.

집은 주로 어린이의 가정생활이나 가족관계에 대한 생각을 담아내는 데, 창문을 너무 많이 그리는 경우(그림2)는 타인과 관계를 맺고 인정 받고자 하는 욕망의 상징이며, 민경이처럼 많은 경우 애정결핍 상태를 표현한다.

반면 창문이 아예 없는 집은 대인관계를 불편해 하며, 다분히 위축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나무는 무의식적인 자신의 모습으로, 뿌리 부분을 과장되게 그렸다면(그림 3) 자기 자신에 대해 불안정하게 느낀다는 징후.

뾰족한 나뭇가지도 불안과 분노를 드러낸다. 자기 자신 및 타인에 대한 태도를 반영하는 사람 그림에서는 지능발달 수준도 알 수 있다.

정신지체 어린이는 몸통이 생략되고, 큰 머리에 팔 다리가 바로 연결된 이른바 ‘올챙이 그림’(그림 4)을 그린다. 젖먹이 시절 늘 쳐다보던 엄마의 크고 동그란 얼굴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유독 가족관계가 밀접한 우리나라에서는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가족을 그리는 ‘운동성 가족화검사’로 가족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집어낼 수 있다.

비교적 화목한 가정의 어린이(그림5)와 달리 가족간 애정표현이 부족한 가정의 어린이는 벽이나 칸막이로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분리한 그림을 그린다.(그림6)

그림에 대한 이 같은 해석 방식은 비슷한 정서적 상황에 놓여 있는 수많은 아이들의 경우를 집약한 것으로 상당히 타당성이 있지만, 이것만으로 속단하는 것은 물론 위험하다.

집을 그렸다면 누구의 집인지, 누가 살고 있는지 등의 사후질문과 부모 인터뷰, 주변환경 조사를 통해 아이의 상태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핵심요소를 포함하고 있는가’도 판단의 주요 단서. 지붕이 없는 집, 팔다리가 없는 사람은 분명 정상적인 심리상태가 아니다.

신 교수는 “17년간 마음이 아픈 어린이들의 그림을 지켜보면서 말로 표현 못하는 마음고생을 이렇게 그림으로 훌륭하게 그려냈구나 싶어 놀라왔다”면서 “가족과 관계가 좋지 않은 아버지를 오히려 자신과 가까운 위치에 그리는 경우도 있는데, 아버지와 가까워지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낸 것이다. 그림에서 병리적인 징후만 볼 것이 아니라 치료의 가능성도 함께 읽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양은경기자

ke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