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68년 6월9일 로마제국의 제5대 황제 네로가 자살했다. 31세였다. 유럽사에서 폭군의 대명사로 회자되는 네로는 로마의 4대 황제 클라우디우스1세의 두번째 아내인 소(小) 아그리피나비(妃)가 전 남편 아헤노바르부스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다.어머니인 소 아그리피나가 제 남편이자 숙부인 클라우디우스 황제를 독살한 덕에 네로는 16세에 제위에 올랐다.
우리 역사에서 폭군의 대명사로 남아있는 연산군이 그랬듯, 네로도 치세의 초기에는 총명한 군주였다.
그는 철학자 스승 세네카와 근위장관 브루투스의 조언과 뒷받침을 받아 세금을 내리고 매관매직을 금하고 해방노예를 중용하는 등 선정을 펼쳤다.
그러나 네로는 나이 스물이 넘어가면서 포악한 성격을 드러내기 시작해 의붓동생 브리타니쿠스, 친어머니 소 아그리피나, 의붓누이이자 아내였던 옥타비아를 차례로 살해한 데 이어, 스승 세네카에게까지 자살 명령을 내렸다.
한 때 네로의 섭정이었던 세네카는 황제의 난행을 감당하지 못해 시골로 은퇴해 있었으나, 변덕스러운 황제로부터 역모의 의심을 사 비극적 죽음을 맞았다.
네로는 64년에 로마에 커다란 화재가 났을 때는 그 책임을 기독교도에게 돌려 무차별로 학살했고, 그 폐허 위에 웅장하고 호사스러운 별장을 지었다.
도무스 아우레아(황금 궁전)라고 불렸던 이 별장의 입구에는 네로의 거대한 청동상이 서 있었고, 안에는 널따란 광장과 인공 호수, 그리스풍(風) 정원이 갖춰져 있었다.
그리스 문화에 심취했던 네로는 그리스의 체육 경기와 예술 콩쿠르를 로마에 도입하고 스스로 배우로서 극장 무대에 서기도 했다. 그러나 68년 갈리아(프랑스)에서 일어난 반란이 제국 전역으로 퍼지고 히스파니아(스페인) 총독 갈바가 로마시로 진군하자 수도를 탈출해 자살했다.
고종석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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