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갈피 / 책으로 즐기는 축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갈피 / 책으로 즐기는 축구

입력
2002.06.08 00:00
0 0

강철수의 성인만화 ‘바둑 스토리’를 형들의 어깨 너머로 훔쳐보다 바둑에 빠지고, 친구들이 보던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을 뺏아 들고는 야구의 묘미를 다시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그보다 전에는 만화 ‘도전자 허리케인’을 보면서 어설프게 복싱 흉내를 내기도 했습니다.

이들 만화 뺨치는, 축구를 다룬 재미있는 책 뭐 없나, 하는 게 월드컵 열기 와중의 관심사입니다.

손쉽게 인터넷서점을 들어가보면 제법 많은 책들이 특집 형태로 묶여 소개돼 있습니다. 월드컵의 역사와 스타, 축구 규칙 등을 소개한 범상한 책들 말고도 눈길 끄는 역작들이 있지요.

그러나 뭔가 미진합니다. 개설서나 다큐멘터리 말고, 축구가 역사 정치 경제적 드라마라는 식의 이야기 말고….

하던 차에 그 책이 생각났습니다. 그래, 겐타로가 원래는 축구 선수였지. 일본 작가 무라카미 류의 ‘368야드 파4 제2타’라는 소설입니다.

원작은 1993년에 나왔고 작년에 번역판이 나왔는데, 잊고 있다가도 어쩌다 손에 잡히는대로 한 장(章)씩 읽곤 합니다. 그 가까이 있는 걸 몰랐다니.

제목을 보면 짐작되듯 이 소설은 사실 축구가 아니라 골프를 소재로 한 소설입니다. 물론 기자는 축구와도 골프와도 거리가 멀지만요.

소설 주인공의 한 사람인 프로 골퍼 겐타로는 바르셀로나와 상파울루의 프로축구팀 3부 리그에서 뛴 적이 있는 축구 선수 출신입니다.

하지만 축구건 골프건 상관없이, 무라카미 류는 소재를 잡았다 하면 놀라운 상상력과 입심을 버무려 매력 넘치는 소설로 만들어냅니다.

무라카미 류가 이 소설에서 정의하는 축구_ 삶은 이런 것입니다. “미아가 되는 걸 각오하고 자신을 흥분시키는 어떤 것과 거리를 좁히려고 노력하는 것. 이것이 바로 수컷의 본능이다.”

또 축구냐 골프냐에 상관없이, 싫고 좋고 하는 문제를 넘은 스포츠가 주는 흥분과 쾌락의 본질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예전엔 그저 들판을 뛰어다니기만 해도 그것이 몸 안을 헤집고 다녔다. 모든 존재를 내걸고, 자신의 능력을 최고 한도까지 힘껏 끌어올리고서야 비로소 손에 넣을 수 있을지 모르는 그 무언가… 그것이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대다수 노예들은 거의 죽은 시체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규격 속에서 늙어간다.”

재즈, 영화, 인터넷, 와인, 요리 등등 무라카미 류의 촉수에 걸린 테마들은 그 순간 생의 가장 깊숙한 곳에 숨은 의미를 보여주는 소설의 재료로 화합니다.

‘대중적’이란 꼬리표를 붙일 수도 있겠지만, 이 일본 작가의 상상력이 늘 부러웠습니다. 그렇다면 축구를 다룬 한국 문학은 없냐구요? 있습니다.

축구팬인 여성작가 김별아는 최근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의 1969년 실제 축구전쟁을 소재로 한 ‘축구 전쟁’이란 소설을 발표했지요.

우리 소설가가 스포츠로, 남미라는 먼 세계로, 멋있게 상상력의 영역을 넓힌 작품입니다.

제일 좋기는 월드컵을 그 자체로 신나게 즐기는 것이지요. 축구 그 자체보다 더 흥미진진한 축구책이나 축구소설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모든 존재를 내걸고’ 골대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뛰는 선수들을 보면서, 책으로 그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시체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규격 속에서 늙어’ 가기 싫다면 말입니다.

하종오기자

joh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