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정치·사회의식 여론조사는 한국일보사가 창간 48주년(6월9일)을 맞아 자문 교수단과 함께 여론조사기관인 미디어 리서치에의뢰,전국 성인 남녀 1,008명에 대한전화조사 방식으로 27일 실시됐다.표본오차는 95%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이번 여론조사에서 확인된 가장 흥미로운 결과는 한국사회에서 세대별로 뚜렷한 정치ㆍ사회 의식의 편차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젊은 세대일수록 자신을 진보적이라고 평가하며 대북 정책은 물론 국가보안법, 호주제 개폐, 공공산업 종사자 파업 등 기본권 관련 사안, 성장과 분배의 우선 순위 결정 등 각종 정책과 쟁점에서 뚜렷하게 진보적태도를 보이고 있다.
젊은 세대의 진보적 성향은 이들의 교육 수준이 높고 냉전 의식과 권위주의 시대의 정치 문화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게 민주적 가치를 내면화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발견은 분배문제와 보안법문제 등에 대해 30대가 가장 진보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80년대 중반 이후의 민주화 과정에서 ‘386 세대’가 공유한 역사적 경험이 진보적 정치사회 의식을 형성하는 바탕이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세대별 정치사회 의식의 편차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런 세대 요인이 연말의 대통령 선거 결과는 물론 향후 한국 정치 전반에 지속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미 민주당 경선에서 노무현(盧武鉉) 후보가 돌풍을 일으킨 배경에는 ‘노사모’를 중심으로 한 ‘386 세대’와 인터넷 세대의 노후보에 대한 열정적 지지가 중요한 작용을 한 것으로 평가돼 왔다.
이번 여론조사에서도 세대별로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에 뚜렷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령이 낮을수록 노 후보 지지자가 많았고, 반대로 연령이 높을수록 이 후보에 대한 지지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세대 요인의 영향력은 현재까지 한국 정치에서 가장 강력한 변수로 남아 있는 지역요인을 통제해도 여전히 강한 것으로 확인됐다. 물론 젊은 세대의 정치적 관심과 투표율이 현저히 낮았던 경험을 고려하면 현실정치에서의 젊은 세대의 영향력은 감소할 것이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정치가 활성화하고 이를 매개로 젊은 세대의 정치 참여가 활발해 지고 있어 앞으로 젊은 세대의 정치적 영향력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새로운 가치관과 이념적 태도를 가진 젊은 세대의 등장은 한국 정당과 선거, 정치 패러다임의 근본적 변화를 예고한다. 새로운 가치관과 이념으로 무장한 젊은 세대를 끌어 들이기 위한 정당간 경쟁이 치열해 질 것이고 젊은 세대의 정치 의식에 적응하지 못하는 정치인과 정당은 도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치권이나 학자들은 지역 균열이라는 요인에만 주목하면서 세대간 균열에는 그리 커다란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지역이라는 단일 변수를 중심으로 한국의 선거와 정치를 설명하기는 어렵게 된다.
세대별로 분명한 이념 편차가 나타나고 있고, 새로운 이념과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젊은 세대가 사이버 정치를 통해 활발하게 정치에 참여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세대의 정치’가 수십년간 한국 정치를 지배해 온 ‘지역의 정치’를 대체할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 교수단 공동집필
■대선후보 지지도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가 34.7%로, 34.1%를 얻은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를 오차범위내에서 0.6% 포인트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미래연합 대표인 박근혜(朴槿惠) 의원과 무소속의 정몽준(鄭夢準) 의원은 각각 6.6%와 5.1%에 머물렀다. 무응답층은 19.5%.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ㆍ노 두 후보의 지지율에 대해 “이 후보에 대한 지지가 상승했다기보다는 현 정권의 비리와 함께 노 후보의 YS 방문 및 돌출 발언 등이 겹쳐 상대적으로 노 후보의 지지가 하락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연령별 분석 결과 이 후보는 30대 이상 연령층에서 노 후보를 앞선 반면, 노 후보는 20~30대에서 이 후보를 눌렀다. 학력별로는 중졸 이하ㆍ고졸층에서 이 후보가 우세였고, 대재 이상은 노 후보가 강세를 보였다.
직업별로는 자영업자ㆍ주부층에서 이 후보를 더 선호한 반면, 농ㆍ임ㆍ어업, 블루ㆍ화이트칼라층은 노 후보 지지율이 높았다. 특히 학생층에선 노 후보가 47.2%로, 32.1%에 그친 이 후보를 크게 앞질렀다.
지역별 분석에서는 이 후보가 경기, 인천, 충남, 광주ㆍ전남ㆍ전북 등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노 후보보다 우위를 보였다. 그러나 강원과 충청권은 무응답층이 42.4~21.2%로 전체 평균 무응답층보다 많아 눈길을 끌었다. 박 의원과 정 의원은 각각 대구ㆍ울산 등 자신들의 텃밭에서 상대적인 강세를 나타냈다.
박정철기자
parkjc@hk.co.kr
■정당 지지도
정당 지지도 한나라당이 31.8%를 얻어 민주당 24.3%를 앞질렀다. 이어 민주노동당 1.4%, 한국미래연합 1.2%, 자민련 1% 순이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대통령 아들 구속 등 각종 권력형 게이트에 대한 민심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지지 정당이 없다’는 답변도 무려 40.3%에 달해 현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 상당수의 거부감과 무관심을 반영했다.
연령별로 보면 20대는 민주당을 선호한 반면, 30대 이상은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응답자가 많았다. 또 월 평균 소득이 251~300만원인 계층에서는 민주당이 우세를 보였으나, 나머지 소득층에서는 한나라당이 앞섰다. 직업별로는 농ㆍ임ㆍ어업, 블루칼라, 학생층에서 민주당이 강세를 나타낸 반면, 한나라당은 자영업, 화이트칼라, 주부층에서 우위였다.
이번 조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민주당의 텃밭인 광주ㆍ전남ㆍ전북 등 호남에서조차 민주당 지지도가 점차 하락하고 있는 점. 특히 광주의 경우 종전에는 평균 60% 이상이었으나, 이번에는 고작 44.8%에 그쳤다. 한나라당은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민주당을 눌렀다. 민노당은 울산, 미래연합은 대전, 자민련은 충남에서 각각 상대적인 우세를 보였다.
박정철기자
parkjc@hk.co.kr
■대통령후보 지지요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민주당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 요인은 무엇일까. 이번 조사에서 두 후보 지지자의 세대, 출신 지역 등과 이념 성향을 규정하는 대북 인식, 기본권 인식 등의 인과 관계를 분석한 결과 지지 결정에 가장 강한 영향을 미친 요인은 두 후보 모두 응답자의 출신 지역이었다.
또 두 후보 모두 응답자의 대북 인식과 세대가 중요한 지지 요인이었으나 이 후보의 경우 세대, 대북 인식 순인 반면 노 후보는 대북 인식이 세대를 제치고 두 번째 요인인 것으로 분석됐다. 개별 설문과 후보 지지의 상응 관계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드러났다.
이 같은 결과는 아직까지 지역 정서가 대통령 선거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지만 오래지 않아 세대 및 이념 성향이 이를 대체할 만한 변수로 성장할 것임을 시사했다.
대북 경제 지원, 국가 보안법, 통일, 고소득자 세금 등 주요 설문에서 가장 진보적인 응답자들은 노 후보에 몰리고, 가장 보수적 태도를 보인 응답자들은 이 후보 지지에 몰렸다. 다만 성장이냐 분배냐, 공공사업 종사자의 파업, 호주제 개폐 등의 설문에서는 무소속 정몽준(鄭夢準) 의원 지지자가 노 후보 지지자보다도 강한 진보적 태도를 보였다.
한편 주요 후보별 응답자의 특성에서도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됐다. 이ㆍ노 후보와 한국미래연합 박근혜(朴槿惠) 대표, 정몽준 의원 등을 대상으로 한 후보자 선택에서 학력 및 소득 평균치 모두 정 의원이 가장 높았고 이어 노 후보, 이 후보, 박대표 순이었다.
그러나 과거의 투표 참여도에서 박 의원과 정 의원 지지자는 이ㆍ노 후보 지지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았다.
황영식기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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