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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월드컵과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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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월드컵과 북한

입력
2002.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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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가 폴란드를 꺾은 날 세계 언론은 한국 팀의 선전을 놀라워 했다. 그 중에서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의 반응이 인상 깊었다.아시아의 체면을 세워주었다는 것이 반응의 주조였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사상 최다 골로 지고, 세계 최대국가 중국이 맥없이 무너졌으며, 공동 주최국 일본도 비겼는데, 한국만이 유럽의 강호를 통쾌하게 물리치자 아시아인들의 축구 열등감이 고삐 풀린 것이다.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인가.

■그러나 1966년 영국 월드컵 때 북한의 8강 진출에 비하면 예선 첫 승리는 별 일 아니다.

영국 미들스부르 스타디움에서 열린 3번째 경기에서 북한은 우승후보 이탈리아를 1대 0으로 꺾었다. 월드컵 2연속 우승 전력을 가진 이탈리아가 평균신장 165cm의 작고 초라한 무명 팀에게 몇 점 차로 이기느냐에 관심이 쏠린 경기였다.

외출도 없이 3년간 계속된 군사훈련 같은 집체훈련에서 단신의 약점을 커버하는 '사다리 전법'을 익힌 땀의 결실이었다.

■8강 첫 경기에서도 북한은 유럽의 강호 포르투갈과 맞붙어 이 대회 최고의 명승부를 겨루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경기 시작 23초 만에 전광석화 같은 골을 뽑아낸 북한은 맹렬한 기세로 포르투갈 진영을 몰아붙여 전반 21분 22분 두 골을 보태 3대 0으로 앞서갔다.

그러나 체력이 떨어진 북한은 이 대회 득점왕 에우제비오에게 네 골을 허용한 끝에, 3대 5로 분루를 삼켜야 했다. 5만 관중은 고개를 떨구고 퇴장하는 패자에게 더 큰 박수를 보냈다.

■ 60억 지구인들이 한일 월드컵에 열광하는 동안 북한은 아리랑 축전을 열어, 동네 축제 날 문 걸어 닫고 억지 생일상을 차렸다.

아무리 폐쇄 사회라지만 지구의 축제를 모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편집된 녹화방송이라고는 하지만 하루 지나 상암 경기장 개막식 경기를 방송해준 것은 북한 주민의 뜨거운 축구열기를 의식한 때문이리라.

좋았던 시절을 회상할 기회마저 봉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중단된 남북 축구 교환경기를 12년 만에 재개키로 결정한 것도 축구에 대한 관심을 옛날로 묶어두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기자

cjmoon@hk.co.kr

문창재 논설위원실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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