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까지만 해도 내 딴은 제법 세계화된 지성인으로 자처하고 있었다. 글도 쓰고 강연, 대중매체에도 자주 얼굴을 내민다.한국적 상황을 세계의 흐름과 비교하면서 제법 그럴싸하게 떠들어댔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세계는 반쪽도 채 안되는, 참으로 편협한, 구미 일변도였다는 게 드러났다.
‘터키에서 만난 동서 문명’(문덕사 발행), 이게 문제의 책이였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이슬람은 또 얼마나 편견에 넘쳐 있었던가.
내가 오죽 충격을 받았으면 그날 이후 매년 두 차례씩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고 다녔을까. 남미, 아프리카, 지중해 문화권, 중앙 아시아를 다녀왔고 이번 여름엔 동구권으로 간다.
내가 이 책을 접한 건 행운이요 우연이었다. 3년 전 터키 지진 당시 우리 정부 성금이 너무 인색, 민간 모금을 한 게 계기였다.
한국전 때 피를 흘려 우리를 도와준 형제국에 대한 의리에서였다. 거국적인 호응으로 지진 현장을 위로 방문했다.
그때 접한 게 이 책이었다. 명색이 단장이라 사전 지식이 필요해서 읽은 책이었지만 난 아주 반해 버렸다.
저자인 이운성 선생은 국학자요 한학자이시며 향토사 연구에 많은 업적을 쌓아온 분이다.
이 책 부제에 가족 여행기라고 부친 건 선생의 겸손이고, 내용은 참으로 깊어서 선생의 해박한 지식에 놀라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이슬람 문화의 세계적 대가인 이희수 교수를 전문 안내자로 대동했으니 말이다. 실은 이 교수 내외가 터키 유학을 마치면서 아버님을 초청한 게 이 여행이었던 것.
터키에서 만난 동서 문명이 쉬운 필치로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그리고 요즈음 아빠의 사탕 사랑과는 차원이 다른, 깊고 은근한 부자지정이 곳곳에 배어있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찡한 감동을 느끼게 한다. 아들 이 교수가 책의 서두를 열고, 끝을 마감하고 있다.
우리 마당에 월드컵 축제가 열릴 수 있는 것도 피 흘려 지켜준 우방 덕분이다. 난 요즈음 터키 팀 응원단장으로 바쁘다.
기쁜 마음으로 하고 있다. 터키를 넘어 보다 넓은 세계로 눈을 뜨게 해 준 이 책 한 권에 감사를 드리면서.
/이시형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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