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방선거에서 대통령후보를 보고 찍기 보다는 정당과 인물(지방선거 후보)을 보겠다는 사람이 많습니더.”
조그만 공장을 경영하는 황모(47ㆍ부산 금정구) 씨는 7일 부산시장선거에서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의 지원 유세가 큰 변수는 못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노 후보가 한이헌(韓利憲) 후보 지원을 위해 부산 거리를 돌고 있지만 집권층의 비리를 심판하자는 소리에 묻히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래서인지 한나라당 안상영(安相英) 후보와 민주당 한이헌 후보의 지지도 격차는 별로 줄지 않고 있다는 게 현지 분석이다. 월드컵 열기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시민들은 더운 날씨 속에서 “침체된 부산 경제를 살리는 방안을 찾아야 할 텐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노 후보는 금주 초 북구 화명동 롯데 마그넷 앞에서 열린 정당연설회에 참석, 와이셔츠 차림으로 열띤 연설을 했지만 일반 행인 중 연설에 눈길을 고정시키는 사람은 드물었다.
다만 롯데 마그넷 옆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정천우(鄭天愚ㆍ55)씨는 “나는 부산 토박이로서 노 후보에 대해 좋은 생각을 갖고 있지만 민주당과 DJ에 대한 여론은 워낙 좋지 않다”고 말했다.
‘노풍(盧風)’이 대선후보 경선 때에 비해 주춤해졌다고 전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연말 대선에서 되살아날지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렸다. 회사원 김모(45ㆍ동구)씨는 “노 후보 지지가 식어가고 있다. 주변의 얘기를 들어보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와 노 후보 지지자의 비율이 5~6명 대 3명 정도이다.
대선에서도 노무현 카드가 먹혀 들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식당을 경영하는 김모(42ㆍ사상구)씨는 “대통령 아들 비리 등으로 노 후보 지지자 중 일부가 부동층이 됐지만 지방선거가 끝난 뒤에는 부동층이 노 후보쪽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주부 정모(43ㆍ해운대구)씨는 “4월쯤에는 노래방에서도 노 후보 얘기가 나왔는데 요즘엔 그렇지 않다. 대선에선 노 후보를 찍을 생각이지만 의사인 남편의 모임에선 이회창 지지자가 훨씬 많다고 한다”고 말했다.
‘노무현 바람’은 젊은층에는 강세이지만 50대 이상으로 갈수록 노 후보 지지도는 크게 떨어지는 분위기였다. 386세대 대학 강사인 김모(38ㆍ북구)씨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세대를 비롯한 개혁 성향의 젊은 유권자들은 민주당을 싫어하더라도 노 후보를 지지한다.
노 후보의 YS 자택 방문에 대해선 실망하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대선 때가 되면 노 후보 지지가 살아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60대의 주부 고모(61) 씨는 “계모임 13명 중 노 후보 지지자는 1~2명에 불과하다.
경선 때는 이인제씨가 안 됐으면 하는 심리에서 노 후보 선호 분위기가 있었으나 요즘엔 노 후보 자질 문제를 꺼내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부산에 직접 연고가 없는 이회창 후보에 대한 지지는 반(反) 민주당 정서의 반사 효과라는 지적도 많았다. 한 정당 관계자는 “부산시민 10명 중 3명 정도는 이쪽도 저쪽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커튼 장사를 하는 변모(36ㆍ여) 씨는 “지난 번에 김대중 대통령을 찍었는데, 이번에는 이회창, 노무현 후보 모두 신뢰감을 못 주고 대통령 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YS영향력? 큰 흐름 바꿀정도는 못돼요"▼
6ㆍ13 지방선거와 12월 대선에서 부산지역에 대한 김영삼(金泳三) 전대통령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 될까. 부산의 중견 언론인은 “YS가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없지만 약간의 변수로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현지 분위기를 잘 아는 김모(45ㆍ회사원)씨는 “아직도 YS를 욕하는 부산 시민들이 꽤 있지만 40대 이상은 YS에 대한 애증이 교차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YS가 지방선거 전에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다면 한나라당 일부 의원이 가세할 것이란 얘기가 나오면서 부산시장 선거 판세가 6대 4 정도의 혼전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측은 “YS가 노 후보 지원을 결정했더라도 지방선거 판세에 큰 변화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에서의 YS 변수에 대한 시각도 편차가 있었다. 노무현 후보의 측근은 “노후보가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YS가 가세해 준다면 부산 분위기가 뒤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나라당 관계자는 “여론 추이에 민감한 YS가 노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도 적으며, 만일 노 후보를 지지하더라도 여론을 바꿀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울산
7일 울산에는 창당 이후 처음으로 광역단체장을 차지할 희망에 부푼 민주노동당과 영남에서 단 한 석도 내줄 수 없다는 한나라당의 한 치의 양보 없는 접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울산 현지에서 만난 시민들의 반응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시장 선거에 누가 나섰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있었고 정치권 전체에 대한 질타를 늘어놓다 ‘투표 거부 선언’을 하는 시민도 적지 않았다.
이날 오전 고속버스터미널 앞 B음식점에서 만난 종업원 최모(35ㆍ여)씨는 “누가 시장이 되든 마찬가지”라면서 “한 두 번 속는 것도 아니고 아예 관심이 없다”고 외면했다. 현대백화점 옆 N안경점 검안사 한모(25ㆍ여)씨도 “유세하면서 하도 시끄럽게 떠들어 짜증만 난다”면서 “투표할 생각이 없다” 고 잘라 말했다.
애써 지지후보를 밝힌 시민들은 대부분 민주노동당 송철호(宋哲鎬) 후보의 당선을 점치는 경우가 많았다. 한나라당 박맹우(朴孟雨)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는 시민은 상대적으로 적었다. 울산의 한나라당 지지도가 40~50% 선이고,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기 직전 조사에서는 박 후보가 오차범위 이내에서 맹추격 중인 것으로 나타난 것을 고려할 때 뜻밖의 반응이었다.
송 후보 지지를 밝힌 시민들은 ‘인물론’을 그 이유로 들었지만, 무엇보다 지난 시장 선거 등 송 후보가 4차례나 낙선한 데 따른 동정론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남구 신정시장에서 20년째 약국을 경영하는 A씨는 “상인들 사이에 ‘이번에는 송 후보를 찍어주자’는 생각이 많다”면서 “대통령은 한나라당이지만 시장은 인물보고 뽑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토박이들이 많아 한나라당 지지 지역으로 분류되는 남구 야음동 주민 신모(56)씨는 “민주당 후보가 없어서 그런지 부패정권 심판이니 하는 말이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면서 “부패정권 심판은 나중에 이회창 후보를 대통령으로 찍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중산층이 사는 삼산동 H아파트에서 만난 40대 주부는 “지지후보를 결정하지 않았다”면서도 송 후보에 대해 “법조계 출신이긴 하지만 경력을 보면 시민운동가에 가까운 분 아니냐”고 말했다.
공장과 노동자가 밀집한 동구와 북구에서의 송 후보 지지세는 한층 뚜렷했다. 이날 오후 6시 현대중공업 정문 근처 남목(南牧) 마을에서 만난 노동자 조모(34)씨는 “노동자들이 그동안 얼마나 소외됐는지 아느냐”면서 “이번에 꼭 노동자 시장을 만들어서 썩은 정치꾼들을 다 몰아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후보를 지지하는 시민들은 대부분 ‘정권교체’를 위해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을 찍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동울산시장에서 만난 노점상 정모(60ㆍ여)씨는 “박 후보는 잘 모르지만 이회창 후보를 대통령 시키고 정권 찾아오려면 이번에 한나라당 찍어야 한다더라”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지역정서가 약하다는 울산이지만 지역감정을 드러내는 시민들도 있었다. SK에 근무한다는 한 노동자는 “송 후보는 무소속 후보로 나설 때도 저쪽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었다”며 송 후보가 호남 출신임을 거론한 뒤 “당선을 위해 민노당 옷을 입은 것 뿐이지 결국 민주당으로 갈 사람”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신모(47)씨는 “박 후보가 정치신인인 탓에 인지도가 떨어지는데다 한나라당 지지층이 새삼스럽게 의사표시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결국 한나라당 지지도 만큼 표를 얻어 역전할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현대車 파업여부.노총 宋후보지지 '2대변수'▼
‘노심(勞心)’의 향배가 선거마다 큰 영향을 미쳐 온 울산 노동계에 최근 두 가지 변수가 돌출, 시장 선거의 시계를 흐리게 하고 있다.
우선 현대자동차 노조의 파업 돌입 여부에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7일로 조정신청기간이 끝났지만 좀체 타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 단체 행동 가능성이 높다.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일반 시민 사이에 민노당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될 가능성이 있어 한나라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C(45)씨는 “민노당의 송철호 후보가 당선되면 노동자들이 득세해 파업이 거세지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민노총 울산지역본부 관계자는 “시민들 간에 월드컵 기간 중 파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많지만 임금협상도 미룰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 많은 노조원들의 생각”이라며 곤혹스러워 했다.
한국노총 지역본부가 4일 지역 대의원회의를 통해 송 후보 지지를 결의한 것도 예상치 못한 변수다. 한국노총 지역본부가 4ㆍ13총선에서 한나라당을 공식 지지했던 만큼 한나라당 박맹우 후보는 뜻 밖의 타격을 입은 셈이다.
하지만 5일로 예정됐던 공식 지지 표명 기자회견이 연기되는 등 지지 결의 이후 한국노총이 내분에 가까운 진통을 겪고 있어, 한국노총 우군화를 위한 한나라당과 민노당의 물밑 경쟁이 선거 당일까지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안준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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