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웃고, 일본은 울고….”‘강한 달러’가 흔들리면서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 국가의 통화가치가 일제히 강세를 나타내면서 우리나라와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 국가별로 ‘이해(利害) 방정식’이 엇갈리고 있다.
통화가치의 강세는 대외적으로 그 나라 화폐가치가 높아진다는 뜻이며, 그만큼 국가 경제력이 좋아졌다는 신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수출 경쟁력과 경상수지 악화라는 부작용을 가져오기 때문에 각국이 처한 사정에 따라 희비가 교차하는 것이다.
우선 ‘무적(無敵)의 달러화 시대’가 저물어가는데 대해 가장 드러내놓고 반가워하는 곳은 유럽지역.
3일 열린 유럽연합(EU) 재무장관 회의를 마친 뒤 로드리고 라토 스페인 재무장관은 “최근 유로화 강세가 경기회복에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했고, 한스 아이헬 독일 재무장관도 “유로화 강세는 유럽중앙은행(ECB)이 금리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언급했다.
과거 수년간 지속된 유로화 약세에 반감을 가져온 EU 지역에선 이처럼 정부와 중앙은행 모두가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물론 저금리 체제하의 EU 경제가 90년대 미국의 고성장을 흉내낼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시각은 별로 없지만, 지금이 미국을 견제할 경제강국으로 성장할 절호의 찬스인 것도 분명하기 때문이다.
또 역내 교역이 많아 역외 수출의존도가 10~15%에 불과한 이 지역 국가들은 유로화 강세로 인한 수출타격은 미미한 반면 물가는 안정돼 환율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반면 달러 약세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라는 일본. 장기 불황의 터널을 막 빠져 나오려는 찰나에 엔화 강세에 덜컥 발목이 잡혀 수출에 초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엔화 절상(환율 하락) 속도가 빨라지면서 일본 당국은 최근 2주간 4차례나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하며, 엔화 강세를 진정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유럽처럼 자국 통화 강세를 스스로 견딜 힘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주변국 통화의 동반 강세를 야기한 당사자인 미국은 겉으론 “달러 강세가 유지돼야 한다”는 입장이면서도 완만한 속도의 약세는 사실상 용인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물론 확대일로에 있는 경상수지 적자가 골칫거리인데다 일본 경제가 살아나지 못하면 동반 타격을 받는 미국의 입장에선 지나친 달러 약세가 반가울 리 없지만 ‘강한 달러’에 반발하는 수출업계의 압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클린턴 대통령 시대와 비교하면 미국 정부의 달러 약세 방어의지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게 주변국의 시각”이라고 말했다.
고정환율제를 사용하는 중국은 주변국 화폐 강세의 틈바구니에서 가만히 앉아 위안화 약세 효과가 나타나자 대일본 수출경쟁력이 높아졌다며 내심 즐거워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유럽이나 중국처럼 좋아할 처지는 못 되지만 일본처럼 패닉상태가 될 필요도 없는 상태. 다만 일본 엔화보다 원화가 훨씬 크게 절상되는 것만 경계하고 있다.
박 승(朴 昇) 한은 총재는 “최근 달러 가치 하락은 그동안 호황을 누렸던 미국경제와 상대적으로 침체됐던 기타 지역간의 경제력 조정과정으로 볼 수 있다”며 “그런 점에서 세계 경제 전체로는 좋은 현상”이라고 말했다.
남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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