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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60)이경희와 최무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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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 이주일(60)이경희와 최무룡

입력
2002.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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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병실에서 가장 많이 생각나는 사람은 이경희(李璟姬ㆍ70)씨와 고 최무룡(崔戊龍ㆍ1928~1999)씨이다.두 분 다 일세를 풍미한 영화배우였다. 그리고 나와는 잊을 수 없는 사연으로 꽁꽁 맺어진 사람들이다.

이씨는 1950~60년대 최고의 스타였다. 영화 ‘심청전’ ‘모정’ ‘두 남매’ ‘잃어버린 청춘’ 등 당시 눈물 빼는 영화란 영화는 모두 그 양반이 휩쓸었다. 게다가 얼마나 예뻤던지. 전형적인 한국 여인상이었다.

60년대 중반쯤 됐을까. 톱 스타 이씨와 무명의 유랑극단 보조MC였던 나와의 황홀한 인연이 시작됐다.

나는 그때 한 유랑극단을 좇아 다니고 있었다. 말이 보조MC이지 극단의 온갖 심부름과 잡일을 다하던 일꾼 신세였다.

극단이 이따금 큰 도시로 나올 때가 있었는데 그때 게스트로 초빙한 사람이 바로 이씨였다.

어렵사리 이씨를 모셔와 공연을 한 지 이틀쯤 지났을 때의 일이었다. 그 천사 같은 영화배우가 저녁 때 나를 숙소로 부르는 것이 아닌가

. 극단 사람들은 여인숙에서 자고 이씨는 호텔에서 머물던 때였다. 숙소에는 이미 닭튀김과 소주, 담배까지 놓여있었다.

이씨는 “드세요. 참으로 고생이 많습니다”라고 말했다. 정말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자상하니 스타가 됐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다음날 이번에는 공연 도중에 내 주머니에 뭔가를 쑥 넣어줬다. 3만원이었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거금이었다.

난 이때부터 착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아, 저 여자가 나를 사랑하는구나.’ 당시 그와 나의 신분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주위에서는 난리가 났다.

“야, 저런 여자일수록 너같이 괴상하게 생긴 사람을 좋아할 수 있는 거야. 주일이, 넌 이제 고생 끝이다.”

며칠 후 나는 호텔로 찾아가 사랑을 고백했다. “저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저를 사랑하는 만큼 저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열심히 하면 좋은 날이 있을 거에요.” 물론 나는 이 ‘좋은 날’을 ‘결혼’으로 해석했다. 그날 밤 나는 너무 행복해 밤새 울었다.

그리고 그에게서 전화가 오기만을 며칠동안이나 기다렸다. 그러나 그 같은 톱 스타가 나에게 전화를 했겠는가.

그는 내가 열심히 살면 언젠가는 스타가 될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서울로 그가 올라간 후 나는 매일 소주를 마셨다. 주위에서는 올라갈 나무를 쳐다보라고 했다.

제 정신을 차리기까지는 거의 반 년이 걸렸다. 훗날 내가 유명해지고 나서 몇 번 만나 당시 이야기를 들려주니까 아주 좋아하셨다.

“그때 차라리 이주일씨와 결혼할 것을 그랬어요.” 얼굴을 붉히면서 그가 하던 말이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고 최무룡씨와의 인연은 이보다 더욱 가슴이 아프다. 1999년 11월의 일이다.

그는 60~70년대 내가 있던 유랑극단에 영화배우 이대엽(李大燁)씨와 함께 출연하면서부터 나와 30여 년을 친하게 지냈다. 당시 내게 용돈을 두둑하게 줬던 그 양반이 그 해 갑자기 나를 찾았다

. 나는 그때 재미동포 청과상조회 초청으로 미국 뉴욕 공연을 앞두고 있었는데 그가 “나도 미국에 가고 싶다”고 말한 것이다.

우리는 결국 무대에 같이 서서 노래도 부르며 재미있게 지냈다.

그는 우리 일행보다 3일 먼저 한국에 돌아왔다. 그리고는 우리가 귀국한 지 3일 후에 돌아가셨다. 마지막 공연이자 마지막 미국 구경이었던 셈이다.

나는 그때 귀국선물로 넥타이 핀을 사드렸는데 이게 마지막 선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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