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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대한축구 독립만세

입력
2002.06.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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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또 보고 아무리 다시 봐도 물리지 않는다. 벌써 사흘 전 일이지만 폴란드와의 경기는 여전히 새롭고 신명난다.48년만에 감격의 1승을 거둔 그 날 부산의 열기는 놀라웠다. 만산홍엽(滿山紅葉)이듯 경기장을 온통 붉게 물들인 관중은 무슨 악마, 어떤 귀신도 감히 한국팀에 태클을 걸지 못하게 할 것처럼 강력했다.

폴란드팀은 이 붉은 색의 주술(呪術)에 걸린 것처럼 시종 허둥거리는 모습이었고 경기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에 잔뜩 기가 죽어 있었다.

경기가 끝난 뒤 부산역으로 돌아가는 길의 지하철은 콩나물버스와 다름없었지만, 승객들은 모두가 일행같았고 흥겹게 단체유람을 떠나는 분위기였다.

후끈후끈한 땀이 등에서 등으로 전달되는 지하철 안에서 두 볼에 태극의 스티커문신을 한 60대 남자는 이렇게 외쳤다.

“오늘은 독립기념일보다 더 기쁜 날이야. 코리아 파이팅!”

모두가 웃음을 터뜨리며 즐거워했다. 그렇다. 부산에서의 6ㆍ4대첩은 한국축구에 독립기념일과 같은 기념비적 경기였다. 우리 축구는 이 한 판으로 독립했다.

아시아축구의 새 역사를 기록함에 따라 16강을 넘어 8강에 대한 기대도 커져 가고 있다.

한국축구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세계에 알린 날을 그대로 넘기지 말고 6월4일을 ‘축구의 날’로 정하자. 해마다 이 날이 되면 일본도 부르고 북한도 불러 축제를 벌이고 기념행사와 세미나를 열어 한국축구의 저변을 확대해 나가자.

‘축구의 날’에는 단순히 경기만 해서는 안 된다. 축구의 역동성과 생명력, 탈문명적 요소가 공동체문화의 복원과 민족ㆍ 사회통합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축구가 16강, 8강에 들면 질서와 시민의식도 덩달아 성장하는 것일까. 우리는 아직도 남을 배려하거나 양보하는 데 익숙치 못하다.

‘폴스카 골라(폴란드에 골을)’를 외치던 폴란드사람들은 경기가 끝난 뒤 스스럼없이 한국관중과 어울렸고 사진을 함께 찍으며 승리를 축하해 주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을까. 한국팀을 응원하는 것은 좋으나 폴란드가 프리 킥이나 코너 킥을 할 때 야유하던 모습은 보기 좋지 않았다.

5월31일의 개막식은 가 보지 못했지만, 상암경기장에 다녀온 사람의 말을 들으면 문제점이 많았다.

어느 한 구역에서는 출입구 8개 중 5개만 개방해 혼란이 빚어졌다. 항의를 하자 직원들이 식사중이라고 대답했다 한다.

지하철을 탈 때도 안내표지판이 안 보여 인파에 떼밀려 앞사람만 따라가다가 엉뚱하게 택시정류장으로 간 경우가 많았다. 한국인들도 그런데 외국인들은 얼마나 불편했을까.

그의 결론은 “아직 멀었다”는 것이었다. 수원경기장은 버스가 바로 그 앞에 정차하게 돼 있어 편리하지만 줄을 서서 기다리려 해도 그럴만한 공간이 없다. 자연히 서로 먼저 타려고 다투고 새치기를 하게 된다.

우리는 큰 행사 때마다 친절 청결 질서를 내세운다. 그러나 이를 지키는 것은 개인들에게 부여된 의무일뿐 제도와 시스템을 통해 질서와 시민의식을 지키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노력은 부족하다.

부산의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먼저 타려고 밀칠 때 젊은이들은 종전의 “질서 질서” 대신에 “대~한민국”을 외쳤다.

외국인의 눈을 의식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월드컵이 끝난 뒤에는 어떨까. 우리는 1988년 서울올림픽때 앞만 화려한 가설무대에서 세계를 향해 한 바탕 친절 청결 질서의 쇼를 벌인 경험이 있다.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나쁜 것은 이내 되살아났고, 우리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혼란과 반목이 복원됐다.

14년이 지난 지금 관전문화는 한결 성숙해졌지만, 질서시스템에는 큰 발전이 없다. 우리 축구가 걸출한 스타 플레이어에 의존하지 않고 조직력과 기동력 체력으로 쾌거를 이룩한 것은 사회 전체를 위해 의미가 크다. 한국축구는 팀 플레이와 시스템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축구가 이렇게 해서 독립했듯이 질서와 시민의식도 시스템을 통해 독립해야 한다. 개인들에게만 질서와 시민의식을 요구해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임철순 논설위원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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