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덕현(徐德玄ㆍ70)씨는 1950년 3월 18세에 결혼, 불과 3개월 만에 남편을 전쟁터로 보낸 뒤 4달 만에 전사통지서를 받았다.당시 남편을 따라 세상을 떠날 생각도 했으나 배속의 태아를 생각, ‘고난한’ 삶을 이겨나갔다.
서씨는 전쟁 중에 600평의 농지를 경작, 시부모와 시동생, 어린 자녀 등 8식구의 생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돌아가시자 그는 집안의 가장 역할까지 떠맡아야 했다.
낮에는 들에 나가 일하고, 밤에는 길쌈을 하는 등 억척스러움과 절약으로 돈을 모아 시동생과 시누이를 결혼시키고, 유복자인 아들을 교육시켜 영천전화국에 입사시키기까지 했다.
그러나 평생을 믿고 의지해온 아들이 췌장암에 걸려 손녀 하나만을 남기고 이승을 떠나 서씨는 또 한번 인생의 절망감을 맛보아야만 했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는 서씨는 천주교에 의지, 고통을 이겼으며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지 않도록 며느리를 재가시킨 뒤 젖먹이 손녀를 직접 키워 지금은 의엿한 대학생이 되었다.
서씨는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77년에는 1년치 보훈보상금을 불우 보훈가족 자립기금으로 기탁하는 한편, 84년부터 정신지체아학교와 음성꽃동네 등을 방문, 성금을 전달하고 수용자들을 직접 목욕시키는 등 이웃 사랑을 실천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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