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정신질환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남에게 알리는 것조차 꺼렸지만 이제는 두통 같은 질병의 하나로 여기고 가벼운 마음으로 신경정신과를 찾는 분위기이다.그런데 사회 제도가 이런 변화를 반영하지 못해 안타까울 때가 있다.
얼마 전 필자가 치료를 맡은 어느 환자가 진단서를 발급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환자는 운전면허증을 재발급받을 일이 있어 경찰에 신청했더니 “정신질환이 치료됐다는 진단서를 받아와야 면허증을 발급해 주겠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최근 들어 운전면허증 재발급에 필요하다며 진단서를 요구하는 환자가 부쩍 늘었다.
경찰이 자동차 운전자가 운전 자격이 있는지를 따지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정신질환으로 6개월 이상 입원한 사람이 거주지 운전면허시험장에 출두해 운전이 가능한 상태인지 검사받거나 병이 완치됐다는 진단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검사 통보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필자를 찾는 환자 가운데는 중증 정신질환자도 있지만 우울증 같은 가벼운 질환으로 정신과를 찾는 사람이 더 많다.
이들도 면허증 발급에 필요하다며 진단서를 요구한다. 의사 입장에서 환자가 100% 완치됐다는 소견을 써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완벽한 검사를 했다고 해도 1%의 오진 가능성은 있기 때문이다.
경찰의 진단서 요구가 강화되면 정신치료를 받고 싶어도 정신 질환자로 낙인찍히는 것이 두려워 병원을 찾지 않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
요즘에는 의학기술이 발달해 중증 정신질환자도 약만 잘 먹으면 운전에 지장이 없다.
경찰은 중증 환자에 대한 검사를 강화해야겠지만 가벼운 정신질환에까지 진단서 발급을 요구하는 과잉조치가 없었으면 한다.
/이상혁 분당차병원 신경정신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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