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비가 교차한 아시아 국가들의 첫 경기였다.일본 국민들은 “이길 수 있었는데 아쉽다”면서도 다음 경기에 대한 자신감으로 넘쳤다. 반면 중국 대륙은 월드컵의 높은 벽을 처음 실감한 후 허탈해 했다.
일본과 중국 국민들은 자국 경기에 이어 열린 한국-폴란드 전에서 한국이 완벽한 승리를 거두자 “한국이 아시아의 체면을 세웠다”며 축하를 보냈다.
◆중국
13억 중국인들은 월드컵 첫 경기에서 중남미 강호 코스타리카에게 압도당해 결국 패하자 크게 낙담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전반에는 비교적 잘 싸우다 후반 들어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우왕좌왕하다 4분 만에 2골을 연달아 허용하자 망연자실해 했다.
공원과 거리, 광장, 호텔, 대형식당 등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시민들은 패색이 짙어지자 중국팀에 대한 자조와 탄식을 뱉어냈다.
치우미(球迷:축구팬) 왕잉쯔(王永治ㆍ25)씨는 “조직력과 기동력, 기량 등 모든 면에서 코스타리카가 중국보다 한 수 위였다”며 “앞으로의 경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AP통신은 베이징(北京)발로 “중국인들이 모두 모였고, 지켜본 뒤, 한탄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상당수 중국인들은 실력이 달렸으나 잘 싸웠다는 반응을 보였다. 과일가게를 하는 한 상인은 “우리가 원래 축구 강국은 아니지 않은가”라며 “월드컵 본선 무대에 처음 섰다는 것 자체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날은 6ㆍ4 톈안먼(天安門) 사태 23주년이어서 중국 공안경찰들은 곳곳에서 경계를 강화했다.
그러나 정작 베이징을 비롯한 각 도시의 거리는 한산했고, 시민 대부분은 모두 축구에 빠져드는 모습이었다. 24세라는 한 베이징의 대학생은 “우리는 정치와 스포츠를 혼동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톈안먼 광장에는 최소한 20대 이상의 공안 차량들과 정ㆍ사복 공안 요원들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비상근무를 했으며 공안 차량들은 광장 주변을 계속 순찰하며 시민들의 동향을 감시했다.
광장 곳곳에서는 시위자들을 적발하기 위해 비디오 녹화가 실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젊은이의 거리인 산리툰(三里屯) 등 전국 각지에 마련된 공동 응원구역에는 시민들이 임시 설치된 대형 멀티 스크린에서 시종 눈을 떼지 못했다.
이날 각 음식점에서는 ‘축구장으로 가자’ ‘페널티킥’ ‘골키퍼’ 등의 이름이 붙여진 음식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려 축구가 중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임을 보여주었다.
중국의 다수의 직장과 학교들은 경기를 볼 수 있도록 이날 오후에 휴무 또는 휴교를 했다.
베이징 제4중학은 휴교는 하지 않았으나 오후 수업 시간을 단축, 경기를 보도록 허용했는데 학교측은 “월드컵 경기는 애국적인 사상을 가르칠 수 있는 훌륭한 교육 기회”라고 말했다.
베이징=송대수특파원
dssong@hk.co.kr
◆일본
월드컵 첫 승을 놓쳤지만 H조 최강인 벨기에와 비긴 일본은 16강 진출에 대한 기대가 한껏 높아진 분위기다.
“월드컵 사상 첫 승점을 얻었다.” 손에 땀을 쥐는 경기가 2대 2 동점으로 끝난 뒤 일본 TV의 해설자들은 일제히 이렇게 말했다.
2대 1로 리드를 하고 있는 동안은 “일본이 사상 처음 월드컵에서 상대를 리드하고 있다”고 환성을 질렀다.
동점골-역전골-동점골 허용으로 이어지는 피말리는 경기가 계속되는 동안 1억 일본인들은 환호와 탄식을 반복해 토해냈다. 하지만 기대 이상으로 선전한 데 대해 ‘절반의 성공’이라며 만족해 했다.
‘재팬 블루’의 일본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사이타마(埼玉) 경기장을 가득 메웠던 6만여 관중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러나 경기장에서 ‘닛폰(日本), 닛폰’을 외치던 한 시민은 “이제 우리도 세계 축구의 중심”이라고 어깨를 폈다. 필립 트루시에 감독도 경기 후 “역사적인 경기를 훌륭하게 치렀다”고 소감을 밝혔다.
NHK 해설위원인 오카다 다케시 전 프랑스 월드컵 일본 대표팀 감독은 “첫 경기에 대한 부담감이 있는데 잘한 경기였다”며 “그러나 앞으로도 어려운 싸움이 계속된다”고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이날 일본 언론들은 일본팀이 선취점을 빼앗긴 뒤 동점으로 따라붙고 한때 역전을 이끌어낸 투지를 높이 샀다.
일본 팬들은 후반 40분께 이나모토 선수가 벨기에 수비 2명을 제치고 세 번째 골을 성공시켰으나 공격자 파울로 무효를 선언한 심판 판정에 불만을 토로했다.
요미우리(讀賣)신문도 이 장면을 지적하며 “대어를 놓쳤다”고 보도했다.
도쿄(東京)의 요요기(代代木) 국립경기장, 요코하마(橫浜) 국제경기장, 삿포로(札幌) 경기장 등 전국의 주요 경기장에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돼 각각 수천명의 팬들이 모여 응원을 하는 등 일본 열도 전체가 후끈 달아올랐다.
도쿄의 시부야(澁谷) 등 번화가의 스포츠 카페에서도 수백명씩의 응원단이 TV 앞에 모여 열렬히 응원을 보냈다.
이들은 일본팀의 경기가 끝난 뒤에도 곧이어 중계된 한국 대 폴란드의 경기를 지켜보며 한국을 응원했다.
도쿄의 사무실 타운인 오테마치(大手町)의 빌딩들은 퇴근을 미루고 TV중계를 보며 응원을 하는 회사원들이 많았다.
사무기기 용품 판매 회사의 시오야마 이치로(塩山一郎ㆍ34)씨는 “월드컵에서 1승을 올리기가 이렇게 힘드냐”고 말했다.
한편 대한민국 민단 중앙본부는 이날 도쿄의 한국중앙회관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하고 300여명의 응원단이 모여 일본팀의 경기와 한국팀의 경기를 연속으로 보며 두 팀을 응원했다.
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김철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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