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슛, 골인. 꿈에도 속이 타도록 그리던 첫승….’4일 밤 한국 월드컵 대표팀이 48년을 갈구해 온 ‘예고된 이변’을 만들어 낸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과 전국 방방곡곡은 온통 붉은 물결과 흥분과 환희와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경기장과 안방, 거리에서 애간장을 녹이며 ‘부산대첩’을 지켜 본 4,700만 국민들은 심판의 종료 휘슬이 울리자 기쁨의 눈물을 마음속으로, 눈가로 흘리며 선수들의 선전에 그칠 줄 모르는 박수를 보냈다.
조심스럽기만 했던 “이제는 16강, 8강도 가능하다”는 희망의 목소리도 곳곳에서 분출됐다.
■ 붉은 물결 ‘대~한민국’함성
0…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은 붉은 바다였다.
본부석 건너편 오른쪽 성화대 아래 하얀 옷을 입은 폴란드 응원단 400여명은 마치 붉은 바다 위에 떠있는 외로운 섬 같았다. 한국 응원단 5만여명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들 빨간 옷을 차려 입었다.
붉은 옷의 상징인 대표팀 응원단 ‘붉은 악마’도 이날만큼은 소수였다. 대표팀 유니폼, 한국의 경기가 있는 날을 ‘붉은 옷 입는 날’로 정한 한국일보사가 제공한 티셔츠 등등…. 붉게 물든 경기장 분위기는 폴란드의 기선을 잡기에 충분했다.
붉은 색의 강렬한 이미지는 관중의 함성소리와 함께 상승효과를 일으키며 거대한 해일처럼 폴란드 선수들의 기를 꺾었다.
날이 저문 밤 8시 30분. 심판의 경기시작 휘슬이 울리자 붉은 물결은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전반 10분께. 긴장이 풀리지 않은 듯, 폴란드 문전 공략에 어려움을 겪던 선수들이 기선을 잡아나가자 붉은 물결은 함성과 함께 하늘로 솟구쳤다.
전반 26분께. 이을용의 패스를 받은 황선홍이 그림과 같은 왼발 논스톱 슛을 성공시키자 붉은 물결은 용암이 뿜어 나오듯 경기장을 아예 삼켜버렸다. 후반 8분께, 유상철의 번개슛이 골네트에 꽂히자 경기장은 붉은 함성에 묻혔다.
“붉은 색은 이제 축구 대표팀의 상징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상징이 된 것 같아요.” 첫승을 직접 보고 싶어 붉은 물결에 동참했다는 주부 김양숙(金良淑ㆍ36ㆍ부산 해운대구 중동)씨는 이렇게 외쳤다.
김씨는 대학 동창들과 함께 90분 동안 ‘대한민국, 코리아’를 소리지르느라 목이 쉬었다.
■ 남녀노소 모두 동참
남녀노소도 따로 없었다. 축구사랑과 대표팀 승리에 대한 기원은 모두 붉은 옷 입기 행사로 표출됐다.
축구 할아버지 정종화(鄭宗和ㆍ65ㆍ부산 해운대구 재송동)씨도 ‘붉은 옷 입기 행사’에 동참했다. 백발이 성성한 그는 빨간 스카프까지 목에 매고는 “붉은 색은 승리를 부른다”며 응원석 한켠을 끝까지 지켰다.
운동장 인근에 사는 문형석(文亨碩ㆍ30ㆍ동래구 온천동)씨도 “경기장을 찾는 것으로는 축구 사랑이 부족하다”며 아내와 똑 같은 붉은 옷을 입고 나란히 관중석을 차지했다.
붉은 옷을 입고, ‘붉은 악마’가 선창하는 응원구호에 맞춰 목소리를 높인 관중과 국민은 모두 하나였다
■ 축제의 현장 부산
부산은 동이 트면서 일찌감치 거리 곳곳이 축제의 무대가 됐다. 서면 롯데호텔앞 등에서 깜짝 이벤트가 열리는 등 ‘대한민국’ 환호성이 종일 도시 전체에 메아리쳤다.
‘붉은 악마’ 응원단 3,000여명은 이날 오후 동래중학교 운동장에 집결, 30분거리인 월드컵경기장까지 필승기원행진을 벌여 ‘월드컵가도’를 붉게 물들였다.
오전 10시부터 한국-폴란드전 해외 미판매분 3,000장에 대한 판매가 이뤄진 사직야구장 앞에서는 전날 밤부터 몰려 든 1만5,000여 축구 팬들이 밤을 새면서 입장권 확보 전쟁을 벌였다.
경기가 시작되자 부산은 열광의 도가니로 또 변신했다. 해운대해수욕장에서는 골이 터질 때 마다 폭죽이 일제히 솟아올랐고, 부산대 등 7개 대학 캠퍼스 대형스크린 앞에서는 환호가 지축을 흔들었다.
‘오늘은 공짭니다.’ 부산지역 접객업소들은 승리가 확정되자 음식을 무료로 제공하거나 음식값을 대폭 할인해 시민들에게 두배의 기쁨을 전달했다.
■ 방방곡곡 들썩 들썩
’부산대첩’의 낭보는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경기 성남 분당구 중앙공원에 마련된 야외공연장에는 시민 3만여명이 몰려 한국 선수가 공을 잡을 때 마다 선수 이름을 목청껏 외쳤다.
첫 골을 넣은 황선홍이 분당 건영아파트에 사는 이웃이라는 사실을 전해들은 시민들은 ‘황새 만세’를 연발하며 곳곳에서 폭죽을 터트렸다.
/부산=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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