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시작 20분 전.선수들의 마지막 몸풀기가 끝나고 라커룸으로 돌아가는 길에 거스 히딩크 감독은 붉은색으로 뒤덮인 관중석으로 몸을 돌려 태극기와 나란히 걸린 네덜란드 국기를 힐끗 쳐다보았다.
홈 그라운드처럼 편안했을까. 블라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과 짧게 인사를 나눈 그는 자리에 차분히 앉아 그라운드를 바라보았다.
팽팽하던 전반 22분께 서서히 걸어나오며 뭔가를 지시하려 했지만 잔뜩 얼굴이 굳어진 그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전반 26분. 선제골을 터뜨린 황선홍이 벤치로 달려오자 정장 차림의 그는 터치라인 밖으로 이탈, 황선홍을 얼싸안았다.
대기심판은 “제발 들어가 달라”며 그를 말렸지만 히딩크는 되려 심판을 밀치며 몸싸움을 벌였다. 그의 광기는 서서히 되살아났다.
2_0으로 앞서던 후반 34분 설기현이 악명높은 폴란드의 수비수 하이토에게 종아리를 차이자 그는 심판석까지 달려나가 거칠게 항의했다.
전광판의 시계가 90분을 향해 달려갈 즈음에도 히딩크는 터치라인에서 고함을 내지르며 공격을 주문했다.
심판의 두 팔이 허공에 치솟는 순간 그의 두 주먹도 하늘에 치솟았다. 그라운드에서 환호하는 선수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그는 곁으로 다가온 핌 베어벡 코치와 뜨거운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경기장의 5만 관중은 “히딩크”를 연호하며 그를 영웅으로 칭송했지만 그의 머릿속엔 10일 미국전에 대한 작전구상이 슬그머니 떠올랐다.
부산=이준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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