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국민의 눈과 귀가 월드컵 열기에 빠져있는 사이 6·13 지방선거는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다.월드컵은 우리나라를 축구기술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선진국 대열에 진입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며 국제적 행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월드컵이 아무리 재미있고, 지방정치가 실망스럽더라도 내 고장의 일꾼들을 뽑는 21세기 첫 지방선거에 대한 관심이 월드컵 열기에 묻혀서는 안 된다.
이번 선거는 부활된 지방자치 10여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지방자치, 새로운 지방정치를 착근 시키기 위한 축제의 한 마당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월드컵처럼 우리의 심장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지는 못할지 모르나, 냉철한 이성 위에서 지방 민주주의, 한국정치 민주화의 공고화라는 과제에 대한 열정이 느껴지는 국가적 행사이다.
1995년과 98년 두 차례의 지방선거를 통해 지방자치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과 회의는 크게 늘어났다.
최근의 한 여론조사에서 기초의회의 폐지 혹은 축소 주장에 국민의 56.5%가 찬성했고, 자치 단체장의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유권자의 70%가 주민소환제 도입에 찬성했다.
그간의 지방정치에 대한 주민 불신이 어느 정도인지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지방선거는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지역 발전을 위한 정책대결의 장이라기보다는 한국정치의 고질적 병폐인 '지역주의에 편승한 중앙정치의 연장선' 혹은 '돈을 요령껏 잘 써야 당선되는 정치 문화'의 후진성 때문에 그 효용성에 의문을 품는 시각이 많다.
특히 지방선거가 비전 있고 유능한 지역 일꾼들을 뽑기보다는 권위적이고 부패한 중앙정치의 하부구조를 만들고, 각종 부정부패의 조장과 면책도구로 활용되는 현실에서 지방자치제도 자체의 유용성은 물론 그 필요성까지 의심하는 시각이 많다.
이번 지방선거도 과열과 혼탁, 탈법과 부정이 이어져 우려를 자아낸다. 5월말 현재 검찰에 단속된 선거법 위반자가 98년 선거에 비해 7~8배 늘어났다고 한다.
또 이메일을 통한 상대후보 비방과 허위사실 유표 사례가 속출하고 있으며, 사상 유례없는 돈 선거도 우려되고 있다.
공식적인 법정선거 비용만 무려 7,515억원 가량으로 집계된다니, 그 외에 살포될 음성적 선거자금까지 포함하면 가히 천문학적 숫자다.
게다가 상향식 공천제도와 각 정당의 텃밭 지키기에 따라 엄청난 돈이 지출되고 있어 이번 선거에서 공명선거를 기대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가 들 지경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월드컵 열기 때문에 투표율이 더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네티즌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7%만이 지방선거에 참여하겠다고 밝혔고, 31%가 참여하고 싶지만 마땅히 찍을 인물이 없다고 대답했다.
이러한 추세대로라면 투표율은 95년의 68.4%, 98년의 52.7%를 훨씬 밑돌 가능성도 없지 않다.
6·13 지방선거는 지역패권에 기반을 둔 중앙정치와의 연계고리를 끊고 지역 쟁점이 부각되는 선거가 되어야 한다.
정당정치의 현실과 여전히 많은 국가 사무와 중앙정부의 권력 때문에, 또 금년에는 대선 후보들이 조기 확정되었기 때문에 지방선거의 중앙정치화가 불가피한 측면도 있으나, 주민들은 선출되는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바로 자신들의 문제를 결정하고 집행하며 집행부를 감시·감독·견제하는 책무를 가진 대리인이고 대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지방정치에 아무리 신물이 났고, 월드컵이 아무리 재미있더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내 고장의 발전과 함께 깨끗한 행정과 올바른 정치를 위해 월드컵에 쏟는 열성의 일부라도 6·13 지방선거로 돌려 각 후보가 내세우는 지역발전에 대한 비전과 능력, 자질, 정책공약 등을 꼼꼼히 챙겨야 한다. 그래야 삶의 질을 결정할 우리의 지방정치를 한 차원 높일 게 아닌가.
/이종원 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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