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은 참으로 어렵게 탄생했다.폴란드전을 앞두고 한국팀의 맏형 황선홍(34)은 "비장한 각오가 샘솟는다.하지만 골잡이는 골로 말할 뿐"이라고 말했다.4일 그는 자신의짧은 출사표처럼 골로서 말했고,그 한 골로 한국은 16강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폴란드 문전을 오가던 황선홍에게 전반 26분 단 한번의 찬스가 찾아 왔다.왼발의 달인이을용(27·부천)이 수비수를 넘기는 패스를 찔러준 것.황선홍은 먹이를 노리는 황새처럼 날렵하게 왼발을 갖다 댔고,공은 폴란드 골 네트에 가볍게 꽂혔다.
48년간 6차례나 월드컵 무대를 밟은 한국이 꿈에도 그리던 월드컵 무대의 첫 승을 알리며 축구사를 새로 쓰는 순간이었다.동시에 이번을 끝으로 대표팀 유니폼을 벗는 황선홍으로서는 골잡이로서 A매치 50골을 기록하는 감격의 순간이기도 했다.
용문고를 졸업한 후 건국대 2학년 때인 1988년 태극전사가 된 황선홍은 일본 J리그 득점왕에 오를 만큼 발군의 골 감각을 과시하며 15년간 한국대표팀의 간판 스트라이커로 활약해왔다.그 동안 월드컵 본선만 4차례 출전했다.그러나 월드컵은 그에게 불만의 무대였다.16강에 가장 가까이 갔던 94미국월드컵에서 수차례 득점기회를 무산시키며 1골에 그쳐 팬들을 실망시켰다.이후 골감각이 물오를대로 올랐지만 98년월드컵을 앞두고는 불의의 부상으로 정작 본선에서 벤치를 지켰다.풍운의 꿈을 안고 진출했던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등 남다른 아픔도 많았다.그러나 그때마다 오뚝이처럼 재기하며 한국 월드컵 도전사의 골결정력 부족이라는 십자가를 홀로 지는 운명을 안았다.
히딩크 감독 취임 후 지난해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2골을 넣어 한국의 2승을 견인했다.지난 3월 핀란드전에서 길고 긴 골가뭄을 해갈하는 2골을 터뜨려 킬러본능을 과시하며 흔들리는 대표팀을 다 잡았다.
폴란드와의 결전을 앞두고 그는 평생의 버팀목이 돼주던 할아버지를 잃는 아픔을 겪었다.그 슬픔 속에서 그는 한국의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기로 결심했다.그리고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이번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대표팀을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배수진을 친 그는 이제 한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폴란드전의 선취골로 국민적인 영웅으로 거듭 태어났지만,"히딩크 감독과 선수들이 한 몸이 돼 이룬 월드컵 첫 승"이라며 "내가 골을 놓은 것보다 월드컵서 승리를 따낸 것이 더 기쁘다"고 겸손해했다.국민들은 이제 떠나겠다는 그의 앞날을 쉽게 허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부산=월드컵특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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