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열리면서 편집국의 업무편제도 바뀌었다.이미 한달전부터 각 부서에서 기자 몇 명씩을 체육부로 파견했고,지면 역시 월드컵 상보쪽으로 중심을 잡아나가고 있다.이럴 때 외부 인사를 만나면 듣는 인사가 "신문사 무척 바쁘지요?이다.물론 바쁘다.토요일만은 쉬던 기자들이 요즘은 토요일도 나와서 신문을 만든다.그러나 문화부 같은 곳은 지면이 줄어들면서 일이 줄었다
하지만 담당 데스크로서 일이 적어졌다고 마냥 편한 심정은 아니다.공들여 마든 지면이 월드컵 기사의 홍수 속에서 독자들의 시선을 잡지 못하고 흘러가 버릴까 마음 졸이게 된다.특히 정성을 쏟은 기획기사가 나가는 날은 그 전날 경기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할,흥미진진한 격돌이 없길 기대하는 심정까지 된다.한국과 폴란드 전이 보도되는 오늘자는 말할 나위도 없다.5월에 시작한고 정기획물'동양의 신화'가 연재되는 수요일이기 때문이다.
해리 포터와 그리스·로마 신화의 인기로 지금 우리나라를 지배하는 문화의 코드는 서양신화·전설이 되어버렸다.아주 어린 아이들까지도 마녀나 요정,빗자루 같은 문화상징들은 알아도 사람 몸을 재주기만 하면 죽은 목숨조차 살리는 자니 살을 돋게 하는 푸른 물,피가 돌게하는 붉은 물에 대한 상징은 잘 모른다.용궁보다는 아틀란티스가 그럴듯하고,천마보다는 페가수스가 가깝고 아기장수보다는 헤라클레스가 더 친숙한 세대가 되어버렸다.이 때문에 우리 문화의 원형질을 다시 찾아보고자 기획한 것이 '동양의 신화'이다.지금까지 '태초의 신 혼돈''거인반고''인류의 시조 복희와 여와 남매''태양을 쏜 영웅 예''신들의 임금 황제'를 다뤘고 오늘 자로 '남방의 신 신농'을 다룬다.신농은 걸굴은 소이고,몸은 인간인 농사의 신이다.인류를 농경시대로 이끌었다는 자애로운 신이다.
그리스·로마 신화에도 얼굴은 소인데 몸은 인간인 존재가 나온다.크레타의 왕비 파시파에가 황소와 사랑하여 태어난 미노타우로스라는 괴물로 미궁에 갇힌 채 매년 아테네에서 미소년·소녀 7명씩을 공양받아오다가 영웅 테세우스의 손에 죽음을 당한다.미노타우로스와 신농씨와의 간격은 용에 대한 상반된 이미지처럼 동·서양인의 인식 차이를 일러준다.상대방을 알면서 '나'라는 존재는 더욱 명확해진다.동시에 '나'를 분명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상대방에 대한 지식에 압도당해 버리면 정체성을 잃어버린다.이번 월드컵에서도 세네갈이 프랑스를 이긴 것은 세네갈 전국 방방곡곡에서 프랑스의 상징인 닭을 잡아죽인 주술과 관련이 있었다는 보도를 보면 신화와 상징은 바로 현재에 작동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오늘 '동양의 신화'를 독자들이 꼭 읽어주길 기대한다.목요일마다 나가는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도 계속 읽히기를 바란다.작가들인 존재이유를 고유의 필체로 토해내는 이 기획물은 그 문장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다.하기사 이런 희망에 앞서 이 칼럼 자체가 읽히기를 바라야 한느 것인지도 모르지만.꾸벅.
서화숙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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